좋은 공연 볼 기회조차 돈에 따라 차별
자본주의 당연시하지만 과연 정의롭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정과 공평을 이야기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What Money Can't Buy)'이 무엇인지를 화두로 잡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지적했다. 예를 들면 책 읽게 하려고 아이들에게 돈을 준다든지 공연을 보는데 무료로 제공되어야 함에도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줄 서지 않고 좋은 자리에 앉게 한다든지 그런 내용이다.

예전엔 그런 걸 돈 주고 사다니 미쳤어? 하던 것들이 요즘은 당연시하는 것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물이다. 하기야 봉이 김선달은 벌써 100년 전에 물을 팔아먹었으니 '요즘'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마는, 마트에서 물을 사다 먹는 일은 일상화되었다. 공기를 돈으로 사서 마시는 시대라고 오지 말란 법 있을까.

땅도 마찬가지다. 땅 역시 오래전에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살 곳에 집을 짓고 살면 되는 공간이었다. 돈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짓는 기본 요소가 되다 보니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드는 세상이 되었다. 돈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망나니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조차 돈으로 사려고 과감한 시도를 일삼는다.

아버지가 부자에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서도 돈으로 매수해 잘못을 무마하려 시도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직장 부하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불러 몽둥이찜질을 하고서 때린 만큼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서도 돈으로 학위를 사서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생겨났다. 모두 돈으로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돈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일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가.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김중배는 심순애의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했다. 일방적인 욕망을 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거만한 생각에서 비롯된 사건의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 비극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예로 들었던 공연장의 유료 입장 문제를 되짚어 보자.

부자는 편안한 관람을 돈으로 샀다. 부자는 돈의 가치를 얻었다. 하지만 서민은 그 부자 때문에 관람의 기회 혹은 편안하게 볼 기회를 뺏겼다. 이게 정의로운가.

사례 하나 더. 부처님오신날 대웅전 앞에는 수많은 연등이 걸린다. 중생의 평등을 외쳤던 부처 처지에서 보면 믿기지 않을 현상이다. 연등의 가격 차등화 때문에 부자들만 그곳에 연등을 달 수 있다. 가난한 중생의 연등은 어디에 걸릴까. 과연 정의로운가.

공연 기획자들은 수익의 확대를 위해 좋은 자리는 비싸게, 좋지 않은 자리는 싸게 해서 관람권을 판매한다. 우리는 이를 자본주의 원리를 적용해 당연하다 여긴다. 한 공간에서 돈에 의해 차별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게 과연 정의로운가 곱씹어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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