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건 언제쯤이었나.

집안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아본 적도, 머리맡에 커다란 양말을 두고 잔 적도 없다. 색연필 세트를 갖고 싶다거나, 지난번에 친구와 싸운 걸 반성한다거나 하는 편지를 써본 적도 없다. 가짜 수염을 달고 유치원에 나타나는 빨간 옷 아저씨가 진짜 산타라고 생각한 적도, 오래오래 기억할 만한 뜻깊은 선물을 받은 적도 없다.

그렇다고 애초에 산타를 거짓이라고 여긴 건 아니다. 어려도 살림살이가 빠듯하다는 건 알았고 그 와중에 크리스마스는 일 년에 몇 안 되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착한 일을 하면 산타가 찾아올 거라는, 올해는 아니었어도 내년에는 산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곧 희망이었다.

이제 산타는 없다는 걸 알지만,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가끔 뒤통수를 맞고 발등 찍히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믿고 싶은 명제는 많다.

누구든 성실하게 일하면 마땅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비정규직 해고 폭탄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면 개천에서도 용 난다는 것(유명대학 입시가 금수저들만의 리그가 되는 게 아니라), 아껴 쓰고 저축하면 내 집 마련이란 꿈이 이뤄진다는 것(재개발이나 투기 광풍 탓에 터전만 뺏기는 게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재판 거래나 편파 수사에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게 아니라) 같은. 그것은, 진실은 드러나고 진심은 통하고 정의는 살아있고, 하여 세상은 살만한 곳이어야 한다는 절박한 소원이다.

올해도 상식과 이성을 벗어난 사건에 분노하고 절망했던 날이 적지 않다. 그래도 내년에는 다를 거라고 주문하듯 되뇐다. 그것이 또 한 해를 버티게 할 것이다.

선물을 안겨주는 산타는 없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삶 자체가 선물이기를. 부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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