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도외시해 공감 못 받는 법 규제
행동 변화 일으킬 수 있는 제도 돼야

대형마트 자율포장대를 두고 갈팡질팡이다. 발단은 지난 8월 대형마트 4사가 환경부와 체결한 자율협약이다. 내년부터 자율포장대에서 종이상자와 테이프, 노끈 등을 없애기로 했다. 종이상자를 사용하지 않는 제주도 지역 대형마트 성공사례를 전국에 확산시켜 불필요한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장바구니 사용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곳(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기준으로 연간 658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환경단체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종이상자에서 테이프를 제거하면 재활용이 가능한데, 자율포장대를 없애면 비닐봉지 사용을 더 많이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종이테이프 사용이 대안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접착제 부분은 기존 테이프와 같아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 알려졌다. 결국 대형마트는 종이상자는 그대로 두고 테이프와 노끈만 없애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마저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단지 상자를 접기만 한 상태에서는 무거운 상품을 안전하게 담아 옮길 수 없다.

정부 정책을 보면 담당자들이 실제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간혹 있다. 현장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을 볼 때 그렇다. 작은 장바구니로는 한 가정의 '장보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커다란 부직포 가방을 보급한다고도 하지만, 어림없는 이야기다. 힘이 없는 부직포 가방에 일반 장바구니에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많고 무거운 각종 상품을 한 가득 담아 들고 옮기라니, 직접 장보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이다.

정부는 대형마트의 '자율'이라고 한발 뺀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정말 자율일 수 있을까. 자율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협약을 파기하고 모른 척 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대형마트가 정부와 소비자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대형마트는 이번 조치로 불편을 느낀 고객들을 온라인에 더 뺏기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자율포장대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주문한다. 그런데 마트 배송 사원이 수십 개 상품을 배송바구니에서 우리집 거실로 옮기면서 부탁한다. "다음에 주문할 때는 꼭 상자포장 해달라고 주문란에 적어주세요." 종이상자에 담아오면 한꺼번에 내려놓고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쁜 배달 시간에 쫓기면서 일일이 상품을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종이상자 폐지가 소비자뿐 아니라 마트 직원한테도 불편을 끼치는 것이다.

물론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명분은 옳다. '쓰레기 재앙'은 기후 변화와 미세먼지로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현장을 도외시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규제와 법 제정은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일방적인 규제보다는 시민들의 의식 개선과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못하게 막기보다는 잘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자율'이라며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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