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대'홍성택 씨 이야기
경남대 교직원 간접증언도
"외부 동향 알리려 고심"
1979년 부마민주항쟁 때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군인 활동이 처음으로 부마민주항쟁 증언집에 실렸다. 지난 5월 '편의대' 활동을 첫 양심선언 한 홍성택 씨 증언은 항쟁에 직접 참여했거나 목격한 마산시민과 함께 <부마민주항쟁 증언집 마산편·3>에 담겼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979년 10월 항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시민 30명의 당시 생생한 기억을 담은 <마산편·3>을 발간하고, 20일 오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부마민주항쟁 증언집은 2011년 <마산편·1>이 처음 발간된 이후 지난 2월 <마산편·2>가 발간됐고, 10개월 만에 <마산편·3>이 나왔다.
최갑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은 "이렇게 <마산편·3>을 서둘러 낸 까닭은 항쟁 참여자가 고령화되고 있는 데 반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관련자의 명예 회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산편·3>은 부마민주항쟁 전후 연결고리가 된 사건의 증언자들이 목소리를 낸다. 항쟁에 직접 참여·목격한 마산시민의 기억을 담은 이전 증언집과 차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부마민주항쟁 당시 군인 신분으로 사복을 입고 민간인 사이에 침투해 활동한 '편의대' 대원이었던 홍성택(61) 씨 증언이다. 그는 "부마항쟁 이후 인천에 있던 부대에서 기차로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이동했다. 1979년 11월 3일 대규모 학생시위를 차단하는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부마항쟁 당시, 같은 시기에 광주에서 유신 정권에 항거했던 박유순(60) 씨는 당시 광주 상황과 10월 17일 전남대 생활지도관실 방화 사건 전말을 전했다. 1979년 전남대 3학년 학생이었던 박 씨는 "당시 대학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학생을 담당하는 형사가 있었다. 전남대에 상주해서 시찰했던 형사가 100명이 넘었고, 그들이 상시로 머문 곳이 생활지도관실이었다"고 떠올렸다. 방화 계획은 불이 확 붙지 않아 실패했지만 전남대 학원민주화 투쟁의 실천력을 보여주는 일화로 평가받고 있다. 박 씨는 방화 사건으로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했다.
박진해 편집위원장은 <마산편·3>은 이처럼 부마항쟁과 영향을 주고받은 외부 동향과 시대적 상황으로 시야를 넓혀 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YH무역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당시 YH사태 주역이자 마산에서 생활하기도 한 최순영(66) 씨, 수차례 시위로 교도소생활에서 10·26 참여자들을 간접적으로 접한 설훈(66)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증언으로 가능했다.
또 <마산편·3>은 항쟁의 발화점이 된 경남대에 대한 다각적 접근을 시도했다.
박 편집위원장은 "시위 시작 시점에 주요 역할을 한 학생을 비롯해 다른 한편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관여한 교수, 교직원도 증언에 동참했다"며 "김순규 경남대 원로 교수를 통해서는 당시 이사장이었던 박종규(박정희 정권 경호실장) 씨에 대한 간접 증언 등도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는 그동안 익명이었던 부마항쟁 증언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 의미를 더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이후에도 증언집 작업 과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 편집위원장은 "부마항쟁의 진실 찾기가 기록이나 자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1차 사료 역할을 하는 증언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며 "아쉬움은 당시 부마항쟁에 대처했던 정치권과 행정 책임자, 군경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