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마을도서관 올해 15곳 참여 성과 발표회
"책 매개로 소통…마을 현안 공동해결 밑거름"

마을마다 책을 한 권씩 선정해서 함께 읽고 주민들이 같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뭔가 이상적인 풍경 같은데, 실제 창원에서는 오래전부터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2006년부터 창원 지역 마을도서관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한마을한책읽기 운동이다. 연구소는 1994년부터 창원 지역에서 마을마다 작은 도서관 만들기를 해왔다. 이 사례가 전국적으로 전파되는 등 제법 성과를 내면서 이를 기반으로 새로 진행했던 게 한마을한책읽기다.

단순히 책만 읽는 독서운동이 아니다. 마을도서관마다 연초에 그해의 책을 한두 권씩 선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주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이런 활동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하겠다.

▲ 지난 4일 열린 한마을한책읽기 성과발표회 장면. /이서후 기자
▲ 지난 4일 열린 한마을한책읽기 성과발표회 장면. /이서후 기자

적은 예산으로 힘겹게 벌여오던 이 사업이 한국전력 경남본부 지원을 받으면서 올해는 제법 풍성하게 진행됐다. 창원 지역 15개 마을도서관이 참여했는데, 2006년부터 매년 참여해온 곳이 있고, 올해 처음 참여한 곳도 있었다. 도서관 규모도 제각각이었는데, 다들 자신들의 처지와 환경에 맞게 한 해를 꾸려왔다. 지난 4일 있었던 성과 발표회와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자료를 통해 이들의 활동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 마을은 이렇게 책을 정했어요 = 성과 발표회에서 들어보니 마을도서관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한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도서관마다 한마을한책읽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책을 선정했다.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에 있는 작은 도서관 한림리츠빌새마을문고는 올해 처음 참여했다. 이곳은 책 선정을 하려고 먼저 도서관 이용객들의 나이와 대출한 책을 분석했다. 가장 많은 이용객은 초등학생, 가장 많이 대출된 것은 그림책이었다. 이미 많은 아이가 본 유명한 그림책을 제외하고 신인 작가가 최근에 쓴 그림책 중에 아이들 관심을 끌 만한 책을 골랐다. 이렇게 해서 최민지 작가의 <문어 목욕탕>(노란상상, 2018년)이 선정됐다. 함께 이런저런 활동을 하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 창원 한림리츠빌새마을문고 아이들 독서토론 모습. /경남정보사회연구소
▲ 창원 한림리츠빌새마을문고 아이들 독서토론 모습.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역시 올해 처음 참가한 남산평생교육센터는 장준영 작가의 <길이 있어>(책고래, 2018년)란 그림책을 골랐다. 도서관 이용객은 주로 어른이지만, 바로 옆에 시립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 어른과 아이가 같이 읽고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책을 선정한 것이었다.

2006년부터 참여해 올해 14년 차인 사림평생학습센터는 오랜 기간만큼 책 선정에도 나름 내공이 느껴졌다. 이 도서관이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이랬다. 우리 마을에 공통된 고민은 무엇인가, 우리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생각하고 이에 맞는 주제와 이 주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을 선정하려고 했다. 도출한 주제는 세대 간 소통이었다. 이를 토대로 올해는 어른용과 청소년용 두 권을 선정했다. 올해 처음 추진위원에 포함된 청소년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해서 어른용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년), 청소년용은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 휴가>(창비, 2018년)를 선정했다.

▲ 창원 내동평생학습센터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한 아이 모습. /경남정보사회연구소
▲ 창원 내동평생학습센터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한 아이 모습.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창원시 성산구 내동평생학습센터는 산업단지와 상가 밀집지대 안에 있어 올해 목표를 도서관 활성화로 삼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고른 게 이분희 작가의 <한밤중 달빛 식당>(비룡소, 2018년)이었다.

창원여성의전화가 운영하는 신월평생교육센터는 센터 특성에 어울리게 홍재희 영화감독이 쓴 인권 도서 <그건 혐오예요>(행성B, 2017년)를 골랐다. 또 사파평생학습센터는 지역 작가를 선정하자는 의견이 많아 창원 출신 이림 작가의 <뽈리야 빨리>(아동문예사, 2012년)를 선택했다.

◇그래서 어떤 활동을 했느냐면 = 올해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림평생학습센터는 청소년과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활동이 많았다. 주로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마을 노인정 어르신들을 찾아 선정된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어르신들도 가만히 들어보더니 '꼭 우리 이야기 같다'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 창원 신월평생교육센터서 주민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 창원 신월평생교육센터서 주민들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신월평생학습센터는 작은 인원이 모이더라도 자주 책 주제인 인권과 관련한 토론을 벌였다. 특히 한 대학에 다니는 남학생 한 명이 평소 자신은 여성들에게 차별 없이 잘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알지 못하던 차별을 해왔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고백을 하더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올해 대부분 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내동평생학습센터는 이번에 처음으로 작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문화적 혜택을 누린 것 같다는 참석자들의 뒷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진해 한림리츠빌새마을문고는 주변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책 읽기를 진행했다. 독후활동으로 메모장에 감상이나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게 했다. 실제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작가가 아이들이 적은 수많은 글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올해의 책으로 <대장 김창수>(이원태, 돌베개, 2017년)를 선택한 중앙평생학습센터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주제로 <우리말 모으기 대작전 말모이>(백혜영, 푸른숲주니어, 2018년), <개똥벌레가 똥똥똥>(윤여림, 천개의바람, 2016년)을 선택한 반지평생학습센터는 각각 영화 <대장 김창수>와 <말모이>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 창원 현동작은도서관 독서토론 장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 창원 현동작은도서관 독서토론 장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 창원 숲속마을도서관에서 열린 음악회 모습. /경남정보사회연구소
▲ 창원 숲속마을도서관에서 열린 음악회 모습.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올해 한전 지원을 받으면서 15개 중 6개 도서관에서 '책 듣는 도서관'이란 제목으로 조그맣게 음악회도 열 수 있었다. 대부분 이런 음악회를 여는 게 처음이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박종순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사장(한마을한책읽기 공동대표)은 한마을한책읽기의 핵심이 '책읽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책을 매개로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것이 마을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설명이다.

"마을 작은도서관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같은 책을 읽고 한나절 앉아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요."

한마을한책읽기 운동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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