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보 벗어난 문제해결 방식
피해·인간관계 회복에 초점
공동체 소통·공감과정 중요
도내 모델학교도 운영 예정

"얼마 전 아이가 식탁에 물을 쏟았어요. 원래는 화부터 냈을 텐데, 회복적 생활교육 수업을 들은 직후라 제 질문이 달라졌어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치지 않았니?'라고 먼저 물으니, 아이가 '엄마, 조금밖에 안 젖었어요'라고 답하더라고요. 바로 쏟은 부분을 닦고 젖은 옷을 닦더라고요. 그런데 오늘은 똑같은 상황에서 제가 화를 내는 모습을 마주했어요. (웃음)"

지난 17일 창원 대암초교 학부모 대상 '회복적 생활교육' 두 번째 수업에서 한 학부모가 한 말이다. 이 수업은 하경남 경남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 회장(창원기계공고 교사)이 진행했다. 하 교사는 자신의 질문과 대응이 달라졌음을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배움의 한 단계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19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사례 보고회가 17일 오후 경남도교육청 교육정보원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거창군 창남초 조윤주 교사가 '거창지역 교사연합 회복적 생활교육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2019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사례 보고회가 17일 오후 경남도교육청 교육정보원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거창군 창남초 조윤주 교사가 '거창지역 교사연합 회복적 생활교육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존중과 공감의 대화 = 이날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주제를 듣고자 학부모 17명이 귀를 기울였다. 둥글게 원을 만들어서 '나는 ○○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다' 등을 적어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공유했다. 서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다름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지지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듣고 말해주면서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경험을 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경청하는 훈련을 하면서, 내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통할 수 있는 과정으로 이어가고자 했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학부모 장은경(40) 씨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수업을 찾아다니면서 듣는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아이가 자라면서 관계,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40대 중반 이안순 씨도 "아이와 대화할 때 내 기준으로 얘기하고 결론을 내렸다. 수업을 듣고서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회복적 생활 교육이란 = 그러면, 학부모들에게 생활의 변화를 이끌어낸 '회복적 생활교육'이란 무엇인가.

'회복적 학교 세우기' 운동을 펼치는 정진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서부센터 소장이 쓴 <회복적 생활교육 학급운영 가이드북>에서는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처벌로 사건을 종결하거나 행위를 바로잡기보다, 문제와 갈등의 당사자들이 공동체와 함께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영향력을 교육과 성장의 기회로 삼는 방식이다."

기존 교육은 행위에 따라 갚음을 받는 '응보적 접근 방식', 즉 문제를 해결하고자 잘못한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목표를 뒀다. 하지만 '회복적 교육'은 가해자, 피해자 모두 원래의 온전한 상태를 회복하고자 한다. 눈앞의 문제를 처벌로써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상황으로 발생한 피해를 회복함으로써 관계 회복, 자발적 책임, 공동체 회복, 정의 회복 등에 초점을 둔다.

질문을 할 때도 '누가 잘못한 사람인가', '어떤 법을 어겼는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어떤 영향·피해가 발생했는가?', '발생한 영향·피해를 회복하고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등 피해자 중심, 피해 회복을 위한 내용을 묻고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교와 가정 등 생활에서 이 같은 교육이 이뤄지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정의' 개념이 교육 분야에 확대된 것이다. 회복적 정의 운동은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엘마이라에서 시작된 '가해자-피해자 대화'가 계기가 됐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만나 대화하면서 서로 치유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 지난 17일 회복적 생활교육을 주제로 창원 대암초교에서 열린 학부모 수업. /우귀화 기자
▲ 지난 17일 회복적 생활교육을 주제로 창원 대암초교에서 열린 학부모 수업. /우귀화 기자

◇경남의 '회복적 생활교육' 현황 = 경남은 지난 2014년부터 교사들을 중심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경남 지역 교사들은 지난 2014년 5월에 '회복적 생활 교육'을 특수분야 직무연수로 들었다. 그해 11월 전교조 경남지부의 참교육 나눔마당에 회복적 생활교육분과도 만들어졌다. 이듬해인 2015년 7월에 경남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가 결성돼 연구, 연수 모임 등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2017년에는 경남도교육청에 회복적 생활교육 활성화 TF팀이 구성됐고, <학생생활교육 제규정 표준안 및 회복적 생활 교육 자료>도 제작됐다.

지난해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회복적 생활교육 활성화'를 공약에 포함했다. 올해 76개교에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비를 지원했고, 평화로운 학교 공동체를 위한 갈등조정지원단 1팀, 회복적 생활교육 강사단(40명)도 운영했다. 지난 17일에는 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4층에서 '2019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사례 보고회'를 했다. 내년에는 회복적 생활교육 모델학교를 운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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