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상회 통해 운동자금 전달…유족 "활동자료 확보해"

"항일 투사 정덕생 목사를 기억해주세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재조명 받는 가운데 정덕생(1881~1949·사진) 목사 포상 신청이 재추진된다.

부산 기장읍(당시 경남 동래군 철마면) 출신 정덕생 목사는 백산상회 군자금 모금에 깊숙이 관여한 초량교회 2대 목사다. 1994년 발행된 <초량교회 100년사>(1892~1992)에는 "민주주의 기질이 강했던 정덕생 목사는 독립운동의 지원단체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정 목사는 백산상회를 통해 국내에서 모금한 독립운동 비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백산상회는 대동청년단을 조직해 구국운동을 펼친 백산 안희제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설립한 회사다. 백산상회는 일본 감시를 피하고자 표면상으로는 무역업체로 위장했지만, 실제는 국외 독립운동가와의 연락망을 확보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독립운동 기지로 설립됐다.

정덕생 목사는 백산상회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이 발각돼 1922년 2월 평북 중강진경찰서에 압송됐고, 16일간 투옥됐다 풀려났다.

또 정덕생 목사는 1919년 9월 평양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 초대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는 최근 경남기독문화원이 발간한 <다시 보는 경남의 3·1운동>에서 확인된다. 유족은 지난 2015년 4월 보훈처에 정덕생 목사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지만 선정되지 못했다.

손자인 정일영(70) 씨는 "당시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조부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군자금 지원으로 경찰서에 압송됐다는 판결문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1924년 경남노회장으로 활동했던 조부는 1926년부터 교회를 벗어나 광산업에 종사했다.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송금하고자 활동했지만 일제 감시로 여의치 않았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추가 자료를 확보한 정 씨는 이른 시일 내 경남동부보훈지청을 찾아 정덕생 목사 독립유공자 포상을 재신청할 계획이다.

정 씨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었지만 목숨 걸고 독립을 도운 조부의 활동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부의 명예를 지키고, 자손들에게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알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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