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학업 생활 '지옥'
맘속 서툰 사랑에 설렘도

제20회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 응모작 중 아이들의 솔직함이 잘 담긴 글들을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한창 놀고 싶은 아이들 마음이 담긴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에는 나름 진지한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와 이름은 넣지 않습니다.

◇학교, 학원, 숙제 정말 지겨워요 = 먼저 1학년 아이의 글을 볼까요. 제목부터 적나라합니다. '학교는 지옥'입니다.

"오늘은 학교를 가기 너무 싫다. 왜냐하면, 학교는 공부 시간이 너무 길~~~~~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너무 짧다. 선생님이 물통 가져와라, 학예회 준비물 가져와라 등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힘들어서 나는 학교가 지옥이다."

여기서 지옥이란 표현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심각한 이미지는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귀여운 투정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끝이 아닙니다. 대부분 수업이 끝나도 방과 후 교실이나 학원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 역시 '지옥'일 수 있군요. 3학년 아이가 쓴 '지옥에 갔다 온 일'이란 글입니다.

"영어 방과 후를 마치고 이제 지옥에 간다. 이 지옥이라는 언어를 쓴 이유는 나의 인생을 망치는 수학이라는 이 지겨운!!! 단어 때문이다. 이 수학이라는 과목 때메 머릿속이 복잡하고 내 인생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유로운 내 인생, 평범한 학교생활을 수학이 방해하고 어질러 놓았다. (중략) 차라리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이었으면 수학 말고 일이나 했을 텐데 수학이…! 수학이…! 내 인생을 망쳐 버렸다. 인생이 이런 것인가. 고민된다. 아무튼, 화요일, 목요일은 지옥 가는 날이다. 이렇게 살기 싫다."

마지막 '이렇게 살기 싫다'란 문장에서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오후 내내 학원을 돌고 돌고 도는 아이들 모습이 그려져서입니다.

◇놀고 싶다, 놀고 싶다, 놀고 싶다 = 초등학생이면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때입니다. 갖고 싶은 것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들도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금방 싫증낼 거란 걸 잘 알기 때문이죠. 하지 말라면 또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죠. 아이들은 이런 욕망과 좌절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읽어 볼까요.

"뽑기는 내가 갖고 싶은 걸 가지고 있다./ 사탕, 장난감, 과자, 공룡./ 그냥 갖고 싶은데 돈을 내야 한다./ 뽑기는 좋겠다./ 돈도 많고,/ 장난감도 많고…./내가 뽑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학년 '뽑기')

뽑기 기계가 부러운 이유가 돈도 많고, 장난감도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때로 욕망이 지나쳐 '귀여운 나쁜 짓'을 하기도 합니다. 1학년 아이가 쓴 '엄마 돈'이란 글을 볼까요.

"나도 몰래 엄마 돈 1000원을 가져왔다. 처음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문방구에서 오락을 할까? 떡볶이를 먹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문방구에 갔는데 오락도 하기 싫고 떡볶이도 먹기 싫었다. 엄마 돈 1000원에 엄마 눈이 있는 것 같다."

이 짧은 글에 많은 감정이 담겼는데, 그게 또 공감이 됩니다. 특히 '엄마 돈 1000원에 엄마 눈이 있는 것 같다'는 부분 너무 좋지 않나요?

◇자꾸 그 애가 생각나요 = 지금부터는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다음 글은 첫 문장부터 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생각이고, 진지하게 쓴 글이라 존중해주는 게 맞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3학년 아이가 쓴 '나의 사랑'이란 글입니다.

"나는 3학년 초에 처음으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내 사랑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나는 처음 당해본 이별에 많이 울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다른 애를 사랑할 것이다. 평상시처럼 학교를 간 날이었다. 1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 우리반 몇 명 애들은 고양이 놀이를 하는데 그중에서 ○○이라는 남자애가 있는데 고양이처럼 나에게 오더니 귀엽게 날 쳐다봤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때부터였다. 난 그 ○○이라는 남자애에게 푹 빠져 버렸다. 난 계속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계속 그 아이를 쳐다봤다. 그렇게 심쿵거리던 하루가 지나고 평상시처럼 학교를 갔는데 뜻밖에 아주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그 ○○이라는 남자애도 날 좋아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냐면 우리 반에 ○○이라는 애가 있는데, 그 애가 알려주었다. 이제 이대로 깨지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면 좋겠다. 왜냐면 나도 이제 솔로를 벗어나 커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역시 3학년 아이가 쓴 '그 애'라는 글도 볼까요.

"생각 안 하려고 해도 그 애 생각이 난다.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쳐다본다. 리코더 불기도 그 애 들으라고 큰 소리로 분다. 이야기해도 그 애만 보고 얘기한다. 걔가 얘기하면 교장 선생님 이야기보다 더 또렷하게 듣는다. 나도 모르게 그 애한테 풍덩 빠져든다. '뭔가 그 애도 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든다."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확인은 못 한 단계의 그 주체 못할 설렘. 이런 감정은 사실 아이나 어른이나 다르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어른이 될수록 재고 따지는 게 많아지고, 그래서 더욱 주저하게 되는 거겠지요.

아이들 글을 읽고 나니 아이들을 마냥 아이로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때이긴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른인 우리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것들이 아이들 글에는 담겨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잃어버린 것 무엇일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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