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조차 들지 않던 공간
하루하루가 곤욕스럽고
몸과 마음에 병이 들었다

주거권은 보편적, 기본적인 권리다. 헌법 35조에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거권을 누구든 예외 없이 누려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전체 가구 수 대비 주택 비율)은 100%를 넘는다. 도내 주택 보급률 역시 2017년 108.6%로 1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하지만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무주택자가 국민 절반에 달한다.

그중에도 가난 때문에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존중받아야 할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주택 거주자, 보호시설 종료 아동 등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통해 주거 실태와 현황을 살펴보고, 필요한 주거복지망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 2016년 기준 주택이 아닌 거처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 37만 가구로 추정된다. 이 중 고시원 거주자가 15만 2000가구로 41%에 달한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고시원 모습. /연합뉴스
▲ 2016년 기준 주택이 아닌 거처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 37만 가구로 추정된다. 이 중 고시원 거주자가 15만 2000가구로 41%에 달한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고시원 모습. /연합뉴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곧이어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 오른다. 잠시 후 3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좁고 컴컴한 복도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낡은 문 앞에 멈춰 서서 급히 열쇠로 열고 방 안으로 몸을 숨기다시피 들어간다.

"생활이 불안정하다 보니 마음도 불안했다. 사람들을 대면하는 게 무서웠다. 엘리베이터도 아무도 없을 때 탔다."

이모(59·김해) 씨는 여인숙에서 생활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 씨는 현재 LH가 지원하는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 씨가 2년여 전 여인숙으로 흘러들어 간 이유는 오로지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서다.

오래전 남편과 헤어지고 지인한테 사기를 당한 이 씨가 가진 거라곤 몸뚱아리 하나뿐이었다. 갈 곳 없는 그가 처음 향한 곳은 찜질방이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수면실에서 쪽잠을 자고 찜질방 내 매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웠다. 때론 찜질방 하루 요금 8000원도 부담스러워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 한편에서 불편한 잠을 청하곤 했다. 텅빈 어둠 속에서 지독한 고독을 홀로 감내할 때면 서러움과 비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 집이 아니고 남의 가게라서 여름엔 더워도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 한 번 못 틀었다. 겨울에는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온몸으로 버텨야만 했다."

찜질방과 지인 가게를 전전하던 이 씨는 결국 여인숙으로 향했다. 막상 여인숙 입구에 다다르자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앞섰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저 남의 눈치 안 보고 두 다리 뻗을 수 있는 작은 공간만 있으면 더할나위 없을 듯했다.

▲ 찜질방·여인숙 등을 전전하며 삶을 이어온 이 씨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문정민 기자
▲ 찜질방·여인숙 등을 전전하며 삶을 이어온 이 씨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문정민 기자

하지만, 어렵게 찾아 들어간 여인숙도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케케묵은 냄새가 밴 오래된 방은 좁은 창문 틈 사이로 바깥 풍경은커녕 햇빛조차 마음껏 허락하지 않았다. 이 씨는 밝은 낮에 외딴 섬 같은 방을 나갔다가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다시 들어왔다.

방문 밖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주린 배를 채울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다. 한 달 숙박비 35만 원을 내고 나면 하루 밥 한 끼 먹기도 빠듯했다. 마땅한 벌이가 없던 이 씨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삶은 위태로웠고 이 씨의 몸과 마음도 병들어 갔다.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손과 발이 퉁퉁 부었지만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 이유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도 우울증이란 걸 뒤늦게 알았다.

"주거가 불안하니 하루하루가 곤욕이었다. 안정된 생활이 간절했고 사람 답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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