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 영혼·이상향 담은 수묵화
그림 그리면서 내적 성장 하게 돼

진해구청 민원실 2층에 전시된 진묵회원들의 수묵화 작품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자 표면에 한정된 것이라면, 그 광경에 감성과 생기, 개인의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 작가와 그림의 몫이다"라 했던가. 회원들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노라니 그 속에도 표정이 있고 감정이 느껴진다. 발묵과 파묵의 맛을 느껴가며 저 깊은 곳에서 움트며 부풀어 오르는 생명의 기운과 그 본질을 화폭에 오롯이 담기 위해 작가는 불멸의 밤을 보냈으리라.

바람과 함께 춤추는 억새의 화려한 몸짓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토록 가을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녹여낸 작품이 또 있을까. 억새잎이 사운대는 그 여울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 내 마음도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춤을 춘다. 거리를 화려하게 물들인 벚꽃과 구릉지에 넓게 핀 복사꽃이 보는 이를 봄의 향연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힘차고 강인한 생명력이 분출되는 그림 속에 푹 빠져있자니 공연히 내 마음마저 싱숭생숭, 젊은 날의 풋풋했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낙엽 지는 풍경화는 오지고 각다분한 일상의 찌꺼기를 툭 털어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라고 내게 말을 건넨다. 세상의 미추(美醜)를 다 덮어 버린 설경과 눈 내리는 날의 명징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 앞에 서자 머릿속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찬 바람이 모질게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순명의 정신을 일깨워주기도 하는 것이다. 고산준령과 기암괴석이 장관인 작품에서는 대자연의 푸른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곳을 찾는 누구라도 절로 신선이 될 것 같다.

수묵화는 '함축미'를 의미한다고 했던가. 검정·초록·노랑·갈색뿐인데도 풍부하다. 이 단순한 형태와 색감만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작가들의 능력이 놀랍다. 그래서 붓끝에 자신의 영혼과 이상향을 담아내는 동양의 화가들이야말로 도신(圖神)이라 했나 보다. 굳이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공간 구성과 배치, 붓길 따라 사물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감상하는 것도 수묵화의 매력이지 싶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이며 내적인 성장이다. 내재적 본성과 끼를 발견하여 계발하는 훈련이자 심미적 안목과 감성을 키우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자연과 더 가까워지고 그림에 대해 관심도 깊어지면서 사물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점점 자라게 되었고 나름대로 사물을 해석하며 표현해 내는 과정이 그림에 대한 흥미와 상상력을 불태워준다. 붓놀림이 서툴러 애꿎은 화선지만 축내기 일쑤고 먹물이 번져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그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재미와 감동을 주고 절제와 간결의 미학을 가르쳐주기도 하기에 내 생활도 수묵화처럼 단순화하면 삶이 좀 더 가벼워지리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남은 생애를 좀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가꾸어가려면,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하고 도약하고 헤쳐나가는 모험과 설레는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하리라.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랬듯 내가 좋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며 붓의 유희로 일상을 채워갈 것을 다짐해본다. 수묵화의 취운(吹雲)처럼 미소가 잔잔히 번져 나오는 그런 따뜻한 그림을 그려보면서 세상은 아름답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데 오늘따라 붓 잡은 손이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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