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속정에 말로 못 다한 그리움·고마움 글로 표현

아이들의 글이 그냥 묻히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와 경남글쓰기교육연구회가 도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 올해로 20회나 된 오랜 행사인데요. 매년 으뜸과 버금상 8개 작품만 지면에 공개하고 나머지는 그냥 보관합니다.

지난해와 올해 심사 현장에 있어봤는데, 선생님들이 글을 읽으며 너무 즐거워하더라고요.

왜 그럴까 싶어 옆에서 같이 읽어보니 바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글솜씨를 떠나 아이들의 글에는 있는 그대로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순수함이 많이 남아 있는 낮은 학년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아이들도 알 만한 건 다 알고 있다 싶어요. 아직은 힘이 없으니까, 어른보다는 모르는 게 많으니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무엇보다 어른인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그 무언가가 아이들의 글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보관 중인 아이들의 글을 꺼내서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웃다가, 울다가, 한숨도 쉬면서 골라낸 아이들의 글을 세 번에 나눠 싣습니다. 특히 낮은 학년 아이들이 많이 쓴 가족 이야기부터 보겠습니다.

가정사가 드러난 게 많아 학교와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항상 피곤한 엄마 = 맞벌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 아이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글을 먼저 보겠습니다. 다음 글을 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어린이집이라면 종일 있을 수 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니까 학교를 마치면 엄마 아빠 없는 집에서 혼자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죠.

"요즘 우리 엄마 아빠를 보기 힘들다.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가게에 가고 아빠는 가끔 우리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나가려고 샤워를 하고 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형아와 나와 둘이서 한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2학년 '얼굴을 보기 힘든 엄마 아빠')

아이들 글에 피곤한 엄마가 자주 등장합니다. 물론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맛나게 챙겨주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쓴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글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다 3학년 아이들의 글입니다. 이 정도 크면 여전히 어리광은 부리지만 어느 정도 부모의 사정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엄마가 야쿠르트를 시작한 이유는 우리 학원비 때문이다. 학교만 가면 충분히 아빠만 일해도 되는데 학원비까지 있으니까…. 그런데 가면 갈수록 엄마가 까칠해지고 있다. 언니는 사춘기 엄마는 까칠해지고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리고 동생도 옆에서 대들고. 어휴. 그나마 아빠가 나은데 아빠도 저녁에야 오니까…. 나는 솔직히 다른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언젠간 말해야 하니까 여기에 적고 있는 것이다. 억울한 일도 많고 혼나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항상 우리 편이시겠지?" (3학년 '호랑이 엄마' 중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왜 공부할 것 준비 안 했어요?' '엄마도 이제 왔어!' 엄마도 일하고 왔는데, 너무 화냈나? '엄마 미안해요!' '뭐가?' '아…, 아니에요!'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제 엄마도 힘든 것을 알았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엄마는 진짜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근데 엄마는 핏줄이 튀어나와도 걱정할까 봐 얘기를 하지 않는다. 엄마는 우리를 먹이려고 힘든 일을 하신다. 그래도 요즘에는 옷도 치우고, 다 먹은 접시도 갖다 놓는다. 엄마는 참 불쌍하다. 엄마 힘들어도 힘내세요!" (3학년 '엄마도 이제 왔어')

"우리 엄마는 50살인데, 치킨집을 한다. 치킨집을 하면서 치킨을 밥으로도 먹고 엄마가 아침에 데워 먹을 수 있는 밥을 해준다. 새벽 1시에 들어와서 너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엄마가 안 힘들게 치킨집을 안 하면 좋겠다. 그래도 아빠랑, 형아는 배달을 하고 고모는 엄마랑 주방을 하고 나는 포장을 해서 엄마가 치킨집을 계속 해도 되겠다. 하지만, 힘드니까 어깨도 주물러 주고 팔도 주물러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말을 잘 들을 거다." (3학년 '50세 엄마가 치킨집을 한다')

◇만날 늦게 오는 아빠 = 아이들에게 아빠만큼 좋은 친구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글에서 아빠는 주로 늦게 들어오고 발냄새가 지독한 이미지입니다. 팍팍한 사회생활과 고된 노동의 흔적들이겠지요.

"아빠가 늦게 오는 게 싫다. 집에 빨리 오면 나랑만 놀아 준다고 했는데 저번 주도 늦게 오고 이번 주도 늦게 오고. 아빠가 또 약속을 잊어버렸나? 아빠는 다른 건 다 안 까먹는데 나랑 한 약속만 제일 먼저 까먹는다. 아빠의 약속은 풍선보다 더 가볍다." (1학년 '아빠가 늦게 오는 게 싫다')

"아빠는 일을 하고 오면 발냄새가 장난 아니다. 아빠는 매일 일을 하니 힘들겠다. 나도 힘든데 아빠는 몇 배나 더 힘드시겠다. 아빠가 일을 열심히 한 증거는 양말 냄새다. 나는 아빠의 발냄새와 아빠를 존경한다." (3학년 '아빠의 발냄새')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참 대견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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