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와 시군의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산안 심사를 마치고 정회를 선포한 후 계수조정 회의를 비공개로 여는 일이 관례로 계속되고 있다. 매년 말 예산안 심사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계수조정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부처 간 예산 과목의 계수를 증감하는 것으로,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예산안 심사 단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수조정 회의는 법적 근거도 없이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예산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주민들은 알 길이 없다. 의원들 간의 '나눠 먹기', '밀실' 담합, 심지어 '검은' 거래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구조이다. 수년 전부터 지역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다르지 않다. 최근 내년 예산 심사가 끝난 울산시의회와 구·군의회에 대해 계수조정 회의를 공개하라는 촉구가 이어지고 있다. 계수조정 회의 비공개는 국회와 지방의회를 막론하고 이미 수십 년 동안 해묵은 문제다. 2000년 헌법재판소는 국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가 시민의 방청을 불허한 것에 대해 법률적 근거 없는 자의적인 처분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인 국회 방청권이 침해되었다고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의사공개원칙이라는 헌법 원칙이 국민에 의한 의정활동의 감시와 비판을 가능케 하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 공개하지 않으면 비판과 견제가 불가능하다는 헌재의 판단은 지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방의회의 의정활동 비공개 역시 주민 감시와 비판을 봉쇄하는 것이다.

위헌 결정 이후 국회는 계수조정소위 회의 속기록을 공개하고 있으며, 올해 초 서울시의회도 계수조정 회의 공개를 약속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해왔다는 관행을 구실로 삼아 주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지방의회가 여전히 많다. 떳떳하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도의회와 시군의회의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주민 감시가 없는 곳에서 중요한 예산 결정이 이루어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보다 의회 스스로 속기록 공개나 방청, 인터넷 중계 등을 천명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지방의회는 지역주민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일 뿐임을 스스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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