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앞섰던 딸의 수영대회 전부 메달을 줘서 다행이다
꽤나 조용한 겨울 카페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는 서우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다. 졸업을 앞둔 원생들이 모여서 수영대회를 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경쟁한다는 것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고, 혹시 서우가 결과에 어떤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와 아빠 앞에서 어떤 이벤트를 한다는 사실에 무척 들떠있었기 때문에, 응원은 가야지 싶었다. 나는 무심한 척 미리 꽃다발을 주문했고, 아내도 유치원 알림장에서 안내한 작은 응원 피켓을 준비했다. 피켓에는 '인어공주 정서우'라고 적혀 있었다.

▲ 미리 주문한 꽃다발을 들고 있는 딸과 작은 응원 피켓을 들고 있는 아내. /정인한 시민기자
▲ 미리 주문한 꽃다발을 들고 있는 딸과 작은 응원 피켓을 들고 있는 아내. /정인한 시민기자

◇모두의 목에서 반짝이는 메달

당일 아침, 주말 늦잠을 반납하고 일찍 움직였다. 유치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주차를 할 곳은 없었다. 두 딸과 아내를 유치원 정문 근처에 내려놓고, 나는 골목을 한참 헤매다 늦게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는 아이들보다 몇 배가 많은 어른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열기 때문일까, 겨울 외투를 입고 있기에 지나칠 정도로 더웠다. 아내와 온이는 좁게나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서 있었다. 평소에 부모들끼리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제법 되는지 복도는 소란스러웠다.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각기 다른 수영복을 입고, 일렬로 나왔다. 옷을 벗겨 놓고 보니, 모두 병아리같이 작고 여린 모습이었다. 또래들보다 키가 크고 마른 서우는 나에게 첫눈에 보였는데, 딸은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수모를 써서 약간 눌린 얼굴이 갓 태어났을 때의 모습 같았다. 서우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손가락을 빨거나 다리를 떨면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서우야 아빠가 여기에 있어, 하고 소리를 칠 수가 없었다. 복도가 어느 순간부터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 수모를 쓴 딸이 물 속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정인한 시민기자
▲ 수모를 쓴 딸이 물 속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정인한 시민기자

나는 그저 서우를 향해 손을 계속 흔들었다. 각자의 피켓이 있었지만, 모두 비슷한 마음으로 이어진 것 같았다. 응원하기보다는 묵묵히 손을 흔들거나, 이런 순간들을 담으려고 사진을 찍는 부모들이 많았다. 나는 속으로 서우가, 그리고 딸의 오랜 친구들이 울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발선 쪽에 있는 아이들은 초조한 듯 몸을 배배 꼬았다. 하지만, 줄을 이탈하거나 우는 친구들은 없었다. 어느 순간 호각이 울렸고, 첫 번째 조가 수영을 시작했다. 레인에 선 아이들은 물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단지 가끔 작은 탄성이 터졌다. 놀랍게도 어떤 아이들도 가라앉지 않았다. 짧은 다리를 아등바등 움직이니까, 떠서 앞으로 조금씩 움직였고, 레인 선에 닿아도 뜬 상태로 용케 방향을 틀었다. 호흡도 짧은 순간에 어찌나 잘 해내는지. 물 밖으로 나오는 것도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서우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가 아기 오리처럼 뭍으로 올라왔다. 포기한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영 대회가 끝나고 강당에서 다시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입장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제서야 아빠가 보이는지 서우도 평소처럼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유치원에서는 고맙게도 모든 아이에게 메달을 나눠줬다. 금메달은 각 종목에서 최고 기록을 세운 한 명에게 돌아갔지만, 수많은 은메달과 수많은 동메달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영장에서 아무도 손뼉을 칠 수 없었지만, 강당에서는 모두가 손뼉을 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목에 반짝이는 것을 걸고서 부모를 올려다보는 작은 아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퍽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서우도 돌아오는 길에 들른 식당에서 메달을 벗지 않으려 했다. 그날 오후의 놀이터에서도, 그다음 날 집안에서도 목에 계속 걸고 있었으니 말이다.

▲ 유치원 수영대회에서 등수에 상관 없이 메달과 상장을 받고 있는 딸. /정인한 시민기자
▲ 유치원 수영대회에서 등수에 상관 없이 메달과 상장을 받고 있는 딸. /정인한 시민기자

◇겨울의 카페, 따뜻한 일상

카페는 외투가 두꺼워지는 시즌으로 접어들면서 몹시 조용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실, 시험 기간에는 매년 그렇다. 특히 상급 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은 늘 그렇다. 아마도 자식이 시험 준비를 하므로 부모도 외출을 삼가는 듯하다. 특히 수능이 끝나면, 거리가 전체적으로 한적한 느낌이 든다. 산책로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걸음으로 계획된 루틴을 행하지만, 아무래도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그들의 이웃에게도 이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습기에 깨끗한 물을 채워 넣는 것, 여유가 있다면 손님의 빈 잔에 커피를 더 채워주는 것, 기꺼이 앉을 수 있도록 빈자리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 식사 중인 두 딸. /정인한 시민기자
▲ 식사 중인 두 딸. /정인한 시민기자

수 많은 나뭇잎이 자기만의 색으로 떨어지는 동안 나는 어떤 글을 적을 수도 없었다. 카페가 조용했으므로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따뜻한 마음을 적는 것이 한동안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겨졌다. 세상이 전하는 소식은 겨울인데 나만 따뜻해서 되겠냐 싶었다. 두 사람이 사랑해서 두 사람을 키우는 것이 실로 어려운 세상인데 나만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 역시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라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물속에서 날숨을 내뱉듯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삶에 잇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물에 뜨는 것처럼, 가족을 기억하며 아등바등하면서 의미를 찾다 보면 결국 살아지는 것 아닐까 싶다. 세상살이가 고될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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