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문예단체 발간 사화집 지역 역사·애정 듬뿍 담겨

사화집(詞華集). 처음 이 글자를 보고 '시화집'의 오타인가 했다. 알고 보니 영어 앤솔러지(Anthology)를 번역한 것이었다.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을 하나의 작품집에 모은 걸 말한다.

앤솔러지는 꽃다발이란 뜻의 그리스어 안톨로기아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선집(選集) 정도로 통용되고 있다. 이런 뜻에서 보면 가장 오래된 중국 시집 시경(詩經)도 앤솔러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하나의 작품을 여러 명의 작가가 함께 쓰는 앤솔러지 문학이라는 장르도 나왔다.

도내 문인들도 매년 부지런히 이런저런 사화집을 낸다. 이들 사화집은 대개 '작품 모음집'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때로 주제 두고 그에 맞는 작품들을 모으기도 한다. 협회를 중심으로 올해 나온 사화집 중에 본보에 소개가 안 된 것을 살펴보자.

▲ 경남시인협회가 펴낸〈경남시학〉 10호.
▲ 경남시인협회가 펴낸〈경남시학〉 10호.

◇경남시인협회 = 경남시인협회가 이달 발행한 연간지 <경남시학> 10호는 문예잡지라기보다는 사화집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표제 옆에 '경남시인협회 앤솔러지'라고 적혀 있다. 매년 경남시문학상과 <경남시학> 작가상 시상식에 즈음해 인쇄를 한다. 그래서 책 앞부분에 심사평과 수상소감, 수상 작가 작품이 담겼다. 특히 회원 70여 명이 참여한 '테마가 있는 시' 항목에는 '고향'을 주제로 한 시들이 담겼다.

"벚꽃이 흐드러지면/ 나, 삼천포 폐역에 가서 기차표 끊고 싶어진다/ 빠알간 운동화 신고/ 김밥 사이다 챙겨/ 화엄사행 기차표 끊고 싶어진다" (이미화 '삼천포 폐역' 중에서)

▲ 경남시인협회가 펴낸 <유등 꽃피는 남강>.
▲ 경남시인협회가 펴낸 <유등 꽃피는 남강>.

역시 경남시인협회가 지난달에 낸 <유등 꽃피는 남강>(비매품)은 올해 진주 유등축제기념 문학행사 '유등과 함께하는 시인들'에 참가한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진주성과 유등에 대한 시들이다.

"시린 발목 긴 부리로 일필휘지/ 못다 한 말씀이/ 오색 불빛으로 물결치는 유등의 밤// 젖은 날개를 털고 이젠 날아오르오/ 허나,/ 너무 멀리 가지 마오" (천융희 '새 - 논개바위' 중에서)

▲ 경남작가회의가 펴낸 <목숨으로 지킨 한글, 역사가 놓친 의령>.
▲ 경남작가회의가 펴낸 <목숨으로 지킨 한글, 역사가 놓친 의령>.

◇경남작가회의 = 경남작가회의는 올해 사화집 두 권을 냈다. 이들 사화집은 사화집이라기보다 오히려 문예잡지에 가까운 형태로 논문과 좌담회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상반기에 낸 것이 <목숨으로 지킨 한글 역사가 놓친 의령>이다. 올해 1월 개봉한 영화 <말모이>의 실제 주인공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어사전>을 완성한 고루 이극로(1893∼1978) 선생을 주제로 엮어냈다. 선생은 의령 출신이지만 정작 의령에서는 실질적인 기념사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주제다. 책에는 선생의 업적에 대한 강연, 의령군이 한글운동 본고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포함해 선생의 삶이나 한글을 주제로 한 회원들의 작품이 실렸다.

"오늘은 친구이름 써 보는 날/ 순자 말숙 봉순/ 그리고 더 쓸 수 없는/ 이름들/ 세상 밖으로 간 저 이름들을 써 본다/ 지나온 발자국마다 상처 아닌 적 없던/ 이름/ 이름/ 이름/ 복지관 하얀 한글교실에서/ 삐뚤삐뚤/ 성스럽게 앉아있다" (이광두 '복지관 한글교실'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아픔, 밝혀야 할 진실>이란 제목으로 발행한 하반기 사화집은 창원민간인학살사건을 주제로 했다. 협회 작가들이 직접 유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아픔을 기록했다.

▲ 마산문인협회가 펴낸 <마산사랑, 꿈을 키우다>.
▲ 마산문인협회가 펴낸 <마산사랑, 꿈을 키우다>.

◇마산문협 = 마산문인협회도 2014년부터 매년 '마산사랑'이란 이름으로 사화집을 내고 있다. 올해는 지난 10월 <마산사랑, 꿈을 키우다>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지난해는 <마산사랑, 날개를 달다>였다. 매년 회원이 사랑하는 장소와 마산에서의 추억이라는 형식은 비슷하다. 이런 작품이 꾸준히 모이면 마산 지역의 훌륭한 문화자산이 되지 않을까.

"나는 지금 안계로 가네/ 회산다리에서 252번이나 253번/ 시내버스를 타면 되네/ 글쎄 세상이 어수선하니 앞이 보이지 않아/ 내가 지금 안계로 가는지/ 안개로 가는지 잘 모르지/ 좌우지간 나는 지금 회산다리에서/ 252번이나 253번을 기다리고 있네"(성선경 '안계종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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