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서로 단수되는 모양 '패'
한쪽이 따면 상대 곧바로 못 둬
필자가 예닐곱 살에 동네 형과 처음 바둑을 두었을 때였다. 어른들의 흉내를 내기 좋아했던 나이였다. 바둑의 규칙도 거의 모르고 단지 바둑돌을 바둑판에 내려놓는 행위가 '바둑을 둔다'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우리는 바둑을 두었다. 활로를 포위하면 따낸다는 것만 알고 서로 상대의 돌을 잡으러 다녔다. 그러다 상대가 단수된 내 돌을 한 점 따냈다. 그러나 따낸 모양은 상대의 돌 역시 단수가 되는 돌이었다. 나는 즉시 돌을 따냈다. 내 돌 하나를 잡고 득의만만하게 이겼다는 표정이었던 형은 "어? 어!" 라며 시무룩해졌다. 그 형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 돌을 돌려주며 "또 여기 두면 반칙이다"라고 말했다. 왜 반칙인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라는 지위로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형은 나이로, 힘으로 규칙을 바꿀 수 있었고 나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 두지 않고 다른 곳에 두었다.
그러다 반대의 경우가 또 나왔다. 내가 돌 몇 개를 따내자 형은 즉시 내 돌 하나를 따냈다. 나는 "반칙"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형은 반칙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 나의 기권으로 바둑을 끝냈다. 그러곤 더 이상 그 형과 바둑을 두지 않고 일타이득의 내 알까기 실력으로 복수해주었다.
여러분들은 위의 이야기에서 누가 잘못했는지 아시겠는가. 후에 이 규칙을 이해하고서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형은 '패'라는 말은 몰랐지만 규칙은 적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둑에는 돌을 따내고 바로 돌을 따낼 수 없는 묘한 규칙이 있다. 이것을 '패'라고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로는 '覇'로 표현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오히려 예전 문헌에는 '覇'가 아니라 무한한 시간을 뜻하는 '겁(劫)'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림1을 보자. 단수된 백을 흑이 A에 두어 따낸다면 백의 차례에서 A의 흑돌을 따낼 수 있다고 한다면 흑 차례에서 또 백돌을 따내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모양에서 서로 따내는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 무한으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승부를 가릴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모양을 '패'라고 한다. 그래서 만든 규칙이 '패'가 나오면 곧바로 따낼 수 없고 한 차례 지난 후에야 따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동형반복(같은 모양을 반복해서 두는 것)을 금지한 규칙인데 장기에서 제자리를 왔다 갔다 하며 장군을 부르는 것을 금지한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와 달리 즉시 따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내가 돌을 몇 개 따내자 바로 내 돌 하나를 따낸 경우이다. 흑이 A에 두어 백돌을 따내고(그림2-1) 백이 다시 흑을 따내어도 활로(▲)가 남아있는 경우(그림2-2)이다. 이것은 패가 아니기 때문에 백이 이렇게 흑돌 하나를 따내더라도 반칙이 아닌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패의 규칙을 알았으니 바둑을 둘 때 어린 시절의 나처럼 바둑 배우기를 포기하고 알까기로 전향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