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고 짓는다고 잘되는 집 안 돼
집안에 사는 사람부터 바뀌어야

문풍지가 춥다고 투덜거리는 겨울밤, 할머니 무릎 베고 까무룩 졸며 들었던 이야기 하나 풀어 보자.

옛날 어느 마을에 이 서방 저 서방이 담 이웃으로 살았더란다. 마당 노적가리 높이도 서로 고만고만했는데 딱 하나 다른 게 있었더래. 이 서방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웃음소리가 담넘이를 하는데 저 서방네는 사흘거리로 밥상이 마당에서 재주넘기를 하는 게 달랐더랬지.

하루는 저 서방이 풀밭에 매어둔 소고삐가 풀려 논밭을 치닫고 내리달아 난장판을 만들었는데 소를 겨우 붙잡아 놓고는 저 서방이 마누라에게 여물을 어떻게 주었기에 소가 배고파 난리냐고 또 버럭한다.

그러자 저 서방 아내는 며느리를 흘기며 너는 코앞에서 소고삐 풀린 것도 못 봤냐고 악다구니다. 샐쭉해진 며느리가 제 서방에게 풀을 다 뜯었는데 옮겨 매지 않고 뭘 했냐고 앙살을 부린다. 주둥이가 서 발이나 나온 아들이 저 서방에게 진작 고삐를 단단히 매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냐고 대든다. 고작 소고삐 풀린 일 하나로 또 우지끈 뚝딱이다.

저 서방이 곰곰 생각해보니 이 서방네도 이런 일이 있을진대 어째 큰소리 한 번 나지 않는 게 궁금하다. 그 길로 이 서방을 찾아갔지. 자초지종을 들은 이 서방이 풀밭에 묶어둔 소고삐를 풀어놓고 다짜고짜 엉덩이를 냅다 내지르는 게야. 놀란 소가 투레질을 하며 모둠발로 겅중 뛰어 내달아 익은 콩밭에 타작을 하고 고개 숙인 나락 논에 신작로를 만들었지.

그러자 이 서방네 식구들이 소를 몰아 잡아놓고는 먼저 이 서방이 내가 고삐를 단단히 매지 않아 그러니 내 잘못이 크다 하니 여물을 든든히 먹여 두었더라면 소가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며 제 탓이라 이 서방 아내가 받는다. 며느리가 빨래를 하면서 코앞에 소가 풀린 것도 보지 못했다 하니 아들이 그것보다 풀밭이 타작마당 되도록 옮겨 매지 않고 그냥 둔 제 허물이라 말을 막는다. 이러고 서로 제 탓이라 하니 큰소리는커녕 서로 마주 보다 다그르르 웃음이 터진다. 그걸 보고 저 서방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제집으로 돌아갔단다.

할머니는 고래등 기와집에 살거나 집을 고치고 세간을 새로 들인다고 잘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을 곱게 써야 잘사는 거라 하셨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가해지면 우리 집엔 손님이 들기 시작한다. 그중 화풍단이나 뇌신에 효과도 이름도 모르는 만병통치 가루약을 팔던 하촌댁이라는 약장수가 있었다. 입살에 넉살까지 떡메에 찰떡 앵기듯 하는 하촌댁이 해거름 녘에 "형님 계슈?" 하고 사립을 들어서면 할머니는 친정붙이 본 듯 반겼다. 할머니와 겸상으로 저녁을 물리고 화롯불에 묻은 밤을 까먹으며 바깥세상 이야기를 풀어 놓다 함께 자고 새벽같이 다른 마을로 길을 나서곤 했는데 어느 해 일이 터졌다.

하촌댁이 묵고 길 떠난 아침, 할머니 반닫이에 들었던 새끼 돼지 판 돈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종종 푼돈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큰돈이 사라지기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하촌댁이 도둑으로 몰려 식구들 입에 오르자 할머니는 "돈을 허술히 두어 나쁜 마음을 가지게 한 내 잘못이 오히려 더 크다. 그리고 하촌댁이 이 집에 다시 걸음 하면 그 사람 소행이 아니니 그만해라." 몇 달 뒤 들른 하촌댁은 누명을 벗었고 그 후 푼돈 없어지는 일까지도 사라졌다.

소고삐가 풀렸는지 사방이 시끄럽다. 4∼5년이 멀다 하고 집을 짓고 부수고 고친다. 집안에 사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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