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작년 1월 계획 보완 요청
시 단계별 개발 제안 수용 안 돼
최종 협의 단계서 제자리걸음
사업 폐기 목소리도 고개 들어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사면초가다. 권민호 전 거제시장이 추진하다가 끝을 보지 못한 채 변광용 시장으로 바통이 넘어갔으나 국토교통부 최종 협의 단계에서만 2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이 사업은 국토부가 지난해 1월 시에 대기업 참여 등 계획 보완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이후로 사실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시는 자구책으로 단계적 개발에 따른 조건부 승인을 노렸지만, 산단 승인 열쇠를 쥔 국토부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처럼 사업 추진이 구석에 몰린 가운데 국토부는 미분양 우려 등으로 전국의 국가산단 수급을 조정하고, 수요 검증도 깐깐하게 할 방침이어서 앞으로 산단 승인 전망 또한 불투명해 보인다.

▲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국토부 최종 협의 단계에서만 2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사진은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단 조감도. /거제시
▲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국토부 최종 협의 단계에서만 2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사진은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단 조감도. /거제시

◇변광용 시장 1호 공약-이행률 20% 그쳐 = 변 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 후 민선 7기 공약 사업으로 100가지를 제시하면서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단 성공적 추진'을 첫머리에 올렸다. 이는 시정 지표인 '활력 거제'를 대표하는 공약으로 지역 경제 중심축인 조선 산업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추진 과정은 신통치가 않다. 올해 3분기까지 국토부와 협의를 마치고 국가산단 승인을 받으려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 4분기 보상 착수 계획은 시작조차 못 했다. 현실적으로 연내 승인 가능성도 희박하다.

앞서 시는 2016년 4월 정부에 국가산단 계획 승인을 신청해 2017년 10월 관계 기관 협의를 끝마쳤다. 뒤이어 같은 해 11월 중앙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사실상 행정 절차를 완료했다. 이 과정에만 1년 7개월이 걸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국토부가 지난해 1월 추가 보완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핵심은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관련 대기업 참여다. 기존 실수요 기업만으로는 사업 추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 참여는 애초 이 사업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지역 양대 조선사는 오랜 구조조정 여파와 조선경기 침체로 투자를 꺼렸다. 해양플랜트 수주 절벽으로 대규모 생산 용지가 필요한 일감이 줄어든 데다 사업 비중도 상선 위주로 바뀌면서 국가산단 사업 참여를 고려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시는 대안으로 지난해 8월 국토부에 실수요 기업 범위에 산단을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조건부 승인을 제안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국가산단 시행 참여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대기업 참여를 요구하는 국토부 견해가 확고한 데다 기존 민간사업자와 승계 문제 등으로 공공기관(LH 등)이 사업 시행에 참여하는 것도 구조적으로 어려워서였다.

시 관계자는 "올해 (국가산단 승인·고시가) 어려워 보인다"며 "조선 경기가 회복 중이고, 내년에 거제~김천 남부내륙철도(서부경남KTX) 종착역 결정 등 호재가 맞물리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아직 대내외 여건이 안 좋은 상황이라 길게 보고 가야 할 필요도 있다"고 진단했다.

시는 지난달 27일 공약 사업 보고회에서 해양플랜트국가산단과 관련해 단계별 추진 계획 재수립을 검토하고, 공공기관 시행 참여 협의 및 앵커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기간 답보하면서 해양플랜트국가산단 공약 이행률은 20%에 그친다. 이를 두고 거제시 정책자문단에서 쓴소리가 잇따랐다. 자문위원들은 공약 이행률이 낮은 사업은 현실을 고려해 추진 또는 폐기를 놓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행률을 올리는 데 급급해 졸속 추진하기보다는 질적 향상을 꾀하는 쪽으로 신경 써달라고 주문했다.

변 시장도 상당 부분 공감했다. 그는 "시민과의 약속인 만큼 공약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해달라"고 당부하면서 "늦지 않은 시기에 (공약을) 폐기할 부분은 검토를 거쳐 폐기하겠다"고 말했다.

◇국토부 "산단 단계별 추진·조건부 승인 안 돼" =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단 계획을 바라보는 국토부 견해는 확고하다. 애초 대기업 참여를 전제로 진행한 사업인 만큼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승인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는 이 사업에 지역 양대 조선사가 참여할 뜻이 없다는 사실을 오래전 확인했다. 8일 국토부에 따르면 2017년 12월 현장 답사 때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측 실무자 면담을 했고, 사업 시행 참여 의사가 없다고 전달받았다. 국토부는 이전까지 시에서 제출한 자료에는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 실상이 다르게 나타나자 그 이듬해 1월 시에 공문을 보내 대기업 참여 여부 등을 따졌다.

시는 반년가량 고민한 끝에 단계별 산단 추진과 그에 따른 조건부 승인을 국토부에 제안한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시장이 바뀐 후 나온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양플랜트 모듈을 생산하는 산업단지를 만드는 게 주된 목적인데,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초기에는 안벽 설치가 되지 않아 해양플랜트산단이 아니라 단순히 산업시설 용지만 공급하는 산단이 된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양플랜트국가산단에 참여할 의사를 밝힌 약 11개 업체가 3분의 1 규모로 추진하겠다는 사항이 있었지만, 이 기업들 재무제표라든지 관련 사업 시행 능력을 봤을 때 6000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단계별 추진은 작년 8월부터 제시됐지만, 그 당시 어렵다는 의견이 (거제시에) 통보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애초 원안대로 대기업 참여나 공기업이 참여하거나 아니면 충분히 이 사업을 이끌어갈 만한 참여자가 수요 업체로 들어온다면 검토해볼 사항"이라며 "조선 경기가 조금 나아졌다지만, 대기업 참여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는 미분양 문제라든지 국가산단 용지 공급 문제는 철저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 탓에 시가 거듭 밝힌 조건부 승인 역시 실현가능성이 낮다.

국토부 산업입지정책과 관계자는 "조건부 승인은 될 수가 없다. 조건부 승인이라는 얘기는 사실 2단계를 전제로 가겠다는 부분인데, 1단계 추진을 하면 물막이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2단계는 필연적으로 가야 하는 부분"이라며 "1·2단계는 수요가 충분할 때 추진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못 박았다.

사업비 산정도 부실하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사실 1단계 사업비에 6000억 원이라 돼 있지만, 이건 단순 전체 사업비에 면적 비중으로 차지한 부분이지 기반 시설 공사까지 따지면 이 비용보다는 훨씬 많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총사업비가 2~3년 전 금액 기준으로 약 1조 7340억 원인데, 거기에서 1단계로 가겠다는 면적 비율로 금액을 자른 부분이지 조성 공사 비용을 별도로 산출한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거제시에서 어떤 대안을 마련하느냐에 따라서 검토 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라며 "1·2단계로 구분해서 단계별로 추진하는 방안은 어렵다고 회신했다. 사업을 충분히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업 시행자가 참여하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거제해양플랜트산단 = 거제시 사등면 사곡리 일원에 총사업비 1조 7340억 원(전액 민자)을 들여 458만㎡(육지 157만㎡, 해면 301만㎡) 규모 국가산단을 조성하는 게 뼈대다. 민관 합동 특수목적법인(SPC)인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가 시행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