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법안 막겠다고 전 안건 필리버스터
민생법안 볼모 삼은 한국당 용납 안 돼

'인스턴스 던전(Instance Dungeon)', 주로 롤플레잉 장르의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되는 시스템 명칭이다. 보통 온라인 게임에서는 같은 장소에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모여 게임을 한다. 그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동일한 상황을 공유한다. 그런데, 인스턴스 던전은 플레이어마다, 혹은 여러 플레이어가 동맹을 맺은 '파티'마다 개별적인 맵을 제공한다. 같은 시간, 같은 맵에 있어도 플레이어 또는 파티마다 개별적인 게임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스턴스 던전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은 게임에서는 한 사냥터의 몬스터들을 조금 먼저 온 플레이어가 싹 쓸어버리면, 바로 뒤에 오는 플레이어는 몬스터 한 마리 없는 빈 사냥터를 맞이하게 된다. 대개 몬스터들이 다시 소환될 때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뒤늦게 온 플레이어는 '멍 때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뭐 잠깐 기다릴 수도 있지' 할 수 있겠으나, 이런 시스템을 악용하게 되면 아주 '열 받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사냥터 독점이 일어나는 것이다. 악의적인 플레이어가 다른 경쟁 플레이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사냥터를 독점해서 몬스터들을 싹쓸이하는 거다.

이 사냥터가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퀘스트를 수행하는 곳이거나, 좋은 아이템이 나오는 곳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실제로 국내 제작의 한 MMORPG 게임에서 폭정을 휘두르던 혈맹이 사냥터를 독점하고 경쟁 혈맹들의 성장을 방해하자, 수많은 유저가 연대해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 유명한 <리니지> 게임의 '바츠 해방전', '내복단 전쟁'이다.

MMORPG 장르의 게임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스턴스 던전 시스템이 게임에 도입되지 않으면 얼마나 짜증 나고 피곤한지 말이다. 레벨업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퀘스트가 있는데, 그 수행장소인 필드나 던전이 악의적인 플레이어나 파티들에게 싹쓸이돼서 텅 비어있게 된다면 '대략 난감'이다. 리젠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갔는데, 악의적인 플레이어나 파티가 그곳에 진치고 있다가 간발의 차로 다시 싹쓸이하면, 정말 '살의'를 느끼게 된다.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대략 난감'과 '살의'의 감정이 현실에서도 느껴지는 일이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199건의 안건에 대해 모두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신청한 것이다. 패스트트랙으로 부의된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저지하겠다는 명분으로 다른 수백 건의 민생법까지 볼모로 삼았다.

그 민생법안 중에는 올해 초 온 국민을 공분케 했던 유치원 비리 실태를 개선해보겠다는 '유치원3법', 학교 앞 길에서 차에 치여 숨진 민식 어린이 사건으로 만들어진 소위 '민식이법' 등도 있다.

자한당의 입장에서 국회선진화법까지 위반해가며 '빠루'까지 들고, 동료 국회의원을 감금하면서까지 저항했던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아보겠다는 결의를 고려하더라도,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다.

막고 싶은 법안에만 필리버스터를 하지, 애꿎은, 아니,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법안들까지 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는 자한당이 진짜 막고 싶었던 법안은 '유치원 3법'인데, 사안별로 필리버스터를 하면 너무 속내가 드러나 욕을 먹겠다 싶어 다른 법안들까지 싸잡아 막은 거라는 얘기도 있다. 충분히 합리적인 추측이다.

이런 일부 정당(게임에서도 '파티'라고 불리는)의 '깽판'을 막기 위해 국회에도 '인스턴스' 시스템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지 않아서 검찰이 애먼 데서 '잡몹'을 잡느라 칼질을 하고 있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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