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어린이 글쓰기 큰잔치'를 시작한 지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처음 그때를 떠올려봅니다. 지역에서 어린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선생님들이 만나 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린이 글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쓰기 지도방법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이 쓴 글을 두고 토론을 하다 보면 시뻘게진 글 종이가 가슴을 아리게도 하였지요. 그렇게 공부하던 경남글쓰기교육연구회와 <경남도민일보>가 뜻을 모아 글쓰기 큰잔치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삶을 가운데 두고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생생한 자기 목소리를 진솔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삶을 가꾸는 주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또한, 우리말을 잘 살려 쓰며 말 맛을 살리게도 하였습니다. 억지로 꾸며 쓴 글보다 서툴더라도 진솔한 이야기에 눈길을 주었고, 매끄럽게 어른처럼 잘 쓴 글보다 어린이다운 말 맛과 신선함이 살아있는 글을 높이 보았습니다. 올해 스무 번째 잔치에서도 그렇게 보내온 글을 읽었습니다.

예년보다 더욱 풍성해진 글감으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겪은 일을 자세히 밝혀 쓴 글,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들은 어린이 삶을 그림처럼 그려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튜브나 게임, 휴대전화를 감시하는 부모를 감옥의 간수처럼 여기는 아이들, 전자 기기에 묻혀 점점 고립되어 갇혀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여서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학년 으뜸상으로 뽑은 안수환 어린이의 '우리 아빠'는 꾸미지 않은 글쓴이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좋은데이'라는 술을 음료수처럼 좋아해도, 뽀뽀를 하며 입에 침을 묻혀도 모른 척해주는 아이. 늦게까지 일하시는 아빠에 대한 사랑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이 어린이의 마음이 예쁘게 전해져옵니다. 글쓴이의 아빠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구체적으로 잘 밝혀 썼기 때문입니다.

남은채 어린이의 '이번에도 진심' 역시 엄마의 말을 대화 글로 살려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류태이의 '그림 그리기'에도 친구들과 서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다 보니 우정이 끈끈해진 것을 느끼는 아이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옵니다. 이우열 어린이의 '제사 음식'을 읽으면 먹고 싶은 제사 음식을 드디어 입 안에 넣었을 때의 모습을 그리는 순간,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이어져 아이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고학년 으뜸상으로는 '나의 소' 이야기를 쓴 박승지 어린이의 글을 뽑았습니다. 송아지로 태어날 때부터 키우면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밝혀 썼기 때문에 소가 팔려갈 때의 안타까운 마음을 독자도 같이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김승도 어린이는 '놀이동산에 간 날' 이야기를 아주 실감 나게 잘 썼습니다. 대부분 이러면 놀이기구를 탄 순서대로 늘어놓기 바쁜데 이 어린이는 가게 된 배경부터 이해가 가게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후의 과정도 기대하게 되는 재미를 줍니다. 노동현 어린이의 '고민되는 순간'을 읽으며, 6학년 어린이들이 이토록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어린이가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김단아 어린이의 '엄마시계'는 알람보다 우렁찬 엄마시계가 점점 커지며 이불까지 걷어내는데, 이게 엄마시계를 선호하는 이유라니 아이의 마음이 중의적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1500여 편의 어린이 글 속에 파묻혀 읽고 또 읽으며 일요일 하루를 꼬박 보냈습니다. 눈으로 읽다가, 소리 내어도 읽고, 따져가며 읽고, 그렇게 읽을수록 감동하는 글은 오래도록 여러 사람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으면 참 든든합니다. 스무 해를 견뎌온 글쓰기 큰잔치의 무게만큼 단단해진 어린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좋은 글을 읽게 해준 어린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제20회 경남 어린이글쓰기 큰잔치 심사위원 명단

△심사위원장 아동문학평론가 박종순

△심사위원 성복선·최진수 경남도교육청 장학사, 강우성 통영제석초 교사, 공정현 김해봉황초 교사, 동내화 김해경운초 교사, 전진우 거제아주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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