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1960년대 음악감상실·포크 가수 소재로 한 영화
도니체티 오페라 곡으로 설레고 애틋한 사랑 부각

음악, 특히 어느 한 가수의 목소리는 우리를 추억의 그 장소와 시간으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 되곤 한다. 그 시절 즐겨 듣던 그때 노래, 무슨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목인 듯하지만 얼마 전이든, 오래전이든 말이다. 이토록 그리워하며 회상하기를 즐겨 하니 흘러간 과거의 시절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웠었나 보다. 영화를 선택할 때 내용을 떠나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경우가 있다. 나에겐 영화 <쎄시봉>이 그렇다. 제목을 보는 순간 귓가엔 그들이 들려주었던 수많은 명곡이 스쳤으며 가슴엔 두근거림으로 가득했더랬다. 그리고 젊은 시절, 함께 노래했던 친구들.

◇웨딩케이크

쎄시봉이란 간판을 따라 들어간 곳에 마련된 무대에는 한 가수의 공연이 한창이다. '딜라일라'를 열창하는 그는 노래하는 몸짓만 보더라도 딱 '조영남'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대는 '대학생의 밤'.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윤형주의 노래가 끝나고 그의 장기집권이 확정되려는 순간 허름한 옷차림의 가수가 나타나 그의 독주를 가로막는다. 바로 '송창식'. 포크 가요계의 두 별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그들은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대표하는 가수이자 맞수가 된다.

그리고 이제 쎄시봉의 주인은 그들의 가수 데뷔를 위한 듀엣을 구상하나 지닌 음색만큼이나 다른 성향의 둘을 완충해줄 이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결국 한 명을 보강하여 쎄시봉 트리오를 만들기로 한다.

프로듀서 격인 '이장희'는 우연히 오근태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합류를 권유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연습이 원만할 리 없고 다 때려치우겠다는 그들의 앞에 나타난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오근태에게 이제 그녀는 그가 노래하는 이유가 되어 버린다. 이후 수줍게 이어진 그의 고백과 함께 둘은 연인으로 발전하여 행복한 날들과 추억을 쌓아가고 쎄시봉 트리오 또한 우정을 쌓아가며 음악적으로도 완성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쇠퇴해 가는 쎄시봉의 재단장을 위하여 결정된 잠시의 휴관. 근태는 고향 충무(통영)로 향해 아버지의 일을 돕고 그렇게 떨어져 있는 자영과의 사이는 애틋하지만 결국 현실이 그 둘을 갈라놓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한때 좋아했지만, 연극판에서 상처만 남긴 남자가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자영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배우가 꿈이나 단역만 전전긍긍하던 그녀에게 찾아온 뿌리치기 힘든 기회.

프로포즈나 다름없는 그의 제안을 뒤로하고 근태의 고향을 찾은 그녀는 코니 프란시스의 노래 '웨딩케이크'를 들려주며 번안해 불러주길 바란다. 이미 '웨딩케이크'란 노래를 잘 알고 있기에 이 사랑의 끝이 느껴져 벌써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의미심장한 물음.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

이에 늘 해준 것처럼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러주며 대답을 대신에 하는 근태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담겠다는 약속.

이제 새롭게 단장한 쎄시봉이 재개장하고 많은 이들의 함성과 함께 쎄시봉 트리오의 공연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자리는 결국 민자영이 다른 남자에게 공개구혼 받는 자리가 되어버리고 이에 상심한 근태는 잠적, 다음 날 있을 라디오 방송에도 나타나지 않아 결국 트리오는 '트윈 폴리오'라는 이름의 듀엣 데뷔로 이어지고 인기 또한 치솟는다.

하지만 이도 잠시, 트윈 폴리오는 대마초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1년여의 짧은 활동만을 남긴 채 해체되고 쎄시봉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만다. '진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그리고 이제 영화는 20년 이후로 시점을 옮기면서 더욱 픽션이 되어 '웨딩케이크' 가사의 탄생 비화, 평생을 후회할 근태의 결정 등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 영화 <쎄시봉>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송창식(조복래 분). /스틸컷
▲ 영화 <쎄시봉>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송창식(조복래 분). /스틸컷

◇남몰래 흘리는 눈물

윤형주의 1등이 막 발표되려는 순간, 또 한 명의 도전자가 호명되고 허름한 복장의 그는 무대에 오른다. 촌스러운 듯 카리스마로 무장한 그는 바로 송창식.

그리고 그의 권위 있는 목소리가 들려주는 노래는 팝송도 가요도 아닌 한 유명한 아리아(오페라 등에서 나오는 선율적인 독창)다. 서울예고를 수석으로 입학한 실력자의 노래는 모두의 귀를 사로잡는 데 충분했다.

그가 부른 곡은 바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가 남긴 걸작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 중 2막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너무도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네모리노는 대지주의 딸 아디나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형편은 그녀의 사랑을 얻기엔 보잘것없어 전설 속의 사랑의 묘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푸념하던 차, 약장수 둘까마라(이름도 딱 돌팔이 같다)가 마을에 나타난다. 아디나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과 약장수의 현란한 입담이 만나 결국 네모리노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엉터리 약(포도주)을 사곤 기뻐한다. 술에 취한 네모리노의 실수는 결국 아디나에게 실망을 안기고 그녀는 홧김에 군인 벨코레 상사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급작스러운 출전 명령을 받은 벨코레는 결혼 준비를 서두르지만 아디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자신의 진정한 사랑은 네모리노임을 절감하는 한편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상여금을 노린 입대를 결정하는 네모리노, 이 또한 그녀의 사랑의 묘약을 얻기 위한 결정이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상속을 받게 되었다는 소문에 마을 아가씨들은 네모리노에게 갑작스러운 관심을 보이고 그는 묘약의 효험이 나타난 것이라 여긴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아디나는 결국 그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고 이를 본 네모리노는 그녀의 사랑을 확인했다며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른다. "그녀가 나를 사랑해요, 더 바랄 게 없어요" 이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둘은 벨코레의 방해에도 불구, "영원한 사랑이여"라고 노래하며 행복한 가운데 약장수 둘까마라는 마을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난다.

로마니가 각본을 담당, 도니체티가 곡을 붙여 탄생한 오페라 부파(희가극) <사랑의 묘약>은 이렇듯 시끌벅적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희가극에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같은 애절한 아리아를 담아냈다는 것은 놀라운데 당시 많은 이들이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 작곡가 도니체티가 이 곡을 고집했던 것은 그만큼 이 곡에 애정과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테너 '파바로티'가 부른 이 곡을 듣곤 '사랑을 해 본적 없는 내가 사랑을 했었다는 착각이 들었다'라는 한 네티즌의 감상평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는데 그만큼 아름답고도 사랑 절절한 곡이니 들어보시라 권하는 바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시작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딜라일라'에서부터 마지막 제작진 소개 자막에서 배우 김희애(그녀는 이미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곡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버전의 '웨딩케이크'까지 영화 <쎄시봉>엔 진정 아름다운 곡들로 가득하다. 트리오의 첫 연습곡이던 '할아버지 시계', 그들이 함께 무대에서 발맞춰 부르던 '성자들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그리고 '하얀 손수건'까지.

하지만 영화에서 주요하게 사용된 곡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웨딩케이크'다.

특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네모리노가 아디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노래처럼 주인공 근태의 자영을 향한 세레나데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약속도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허무맹랑한 듯한 약속이 못 미더운 것인가? 그렇다고 '다이아몬드 몇 캐럿을 사 당신의 손가락에 끼워드리리' 하며 노래할 순 없지 않은가. 조금만 더 믿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서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말이다. 그래, 사랑하는 이들의 약속은 이래야지 맞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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