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여러 시를 연속으로 읽다 보면 종종 그의 과거 삶과 현재의 생각이 독자의 손과 눈을 통해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될 수가 있다. 마산 출신 조은길 시인의 시들이 그렇지 않나 싶다.

"녹슨 양철 지붕 우리 집 빗소리 아버지 비지땀 흘리며 못질하는 소리 같은 늦은 밤 어머니 손틀 바느질 소리 같은 우리 집 빗소리 비가 오는 동안 밥에서도 옷에서도 책에서도 이부자리에서도 나는 소리 우리 집 빗소리 배고플 때 들으면 배가 더 고픈 소리 화날 때 들으면 더 화나는 소리 눈물 나는 소리 우리 집 빗소리…."('장마' 일부)

▲ 〈입으로 쓴 서정시〉 조은길 지음
▲ 〈입으로 쓴 서정시〉 조은길 지음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시인의 이 시는 보이지 않는 도돌이표에 의해 끝없이 되풀이되는 요란법석 시끌벅적한 가정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사회 문제에도 공감하며 적극적이다. 시 '3·1절 특선 영화'를 보면 그렇다.

"아직도/ 유관순 열사를/ 유관순 누나라 부르고/ 일본군 윤간 피해자를/ 일본군 위안부라 부르는/ 대한민국 3·1절 아침//(…)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 시인이고 여자이니까/ 3·1절을 맞아 존경하는 윤동주 시인과/ 일본군 윤간 피해자를 재클로즈업한 영화/ 『동주』와 『귀향』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

시집의 끝에 붙인 유성호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살짝 소개한다. "시에 차용된 이러한 대상들은 한결같이 인간 존재의 운명을 환기하는 상관물로 기능하면서 그녀가 삶에 대한 깊은 관찰과 고백을 가능하게끔 해주는 주인공들이다."

천년의 시작 펴냄. 140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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