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유명예술인 총출동
'성광집 누님' 추억새기며
일곱번째 시집 발간 축하

 

주인공이 제일 소박했던 출판기념회였다. 태도가 그랬고, 인사말이 그랬다.

지난 29일 오후 4시 창원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실에 이영자 시인의 새 시집 <미리 달다>(창연, 2019년 11월) 발간을 축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일곱 번째 시집이자, 올해 여든이 된 시인의 등단 30주년을 기념한 것이기도 하다. 부림시장 지하에서 조그만 선술집 성광집을 운영하던 분이다. 매일 칠판에 자작시를 적어 놓아 칠판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 1989년 시집 <초승달 연가>를 내며 본격적으로 시인이 됐다. 성광집은 1999년까지 운영했다.

출판기념회에는 지역 문화예술 판에서 한 자리씩 하거나, 이름자나 있는 이들이 다 모였다. 대부분 성광집을 드나들던 이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분명히, 시인 자신보다 주변에서 더 하자고 성화였을 행사일 것이다. 축사를 하고, 축시를 쓰고, 축가를 부르는 이들 중에 시인을 누님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 일곱 번째 시집 <미리 달다>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하는 이영자 시인. /이서후 기자
▲ 일곱 번째 시집 <미리 달다>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하는 이영자 시인. /이서후 기자

성광집 단골 중 고인이 된 현재호 화백과 이선관 시인도 있다. 이영자 시인이 참 좋아하던 이들이어서일까, 새 시집에 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신경림 시인이 초빙되었다는 소문 듣고/ 한복을 미리 식당에 준비해 놓았다 (중략) 가렸던 앞치마만 풀고 나서면/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는데/ 먼 길 오는 시인을 정하게 맞고 싶어/ 물색 치마에 흰 고무신 꽃단장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나를/ 어서 가자 재촉하는 고 이선관 시인이/휘청휘청 앞서가다 돌아보며/ 누나 곱소 오늘따라 참 곱소!" ('오래된 기억' 중에서)

"식당 문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른하고 설레는 시간/ 오거리 통술집 앞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니/ 기사님 옆에는 손님이 앉았는데/ 방향이 같은가 쉽게 타란다/ 먼저 탄 손님이 뭐라 뭐라/ 혼자 말 계속하는데 아는 분이다 현재호 화백/ 뒤에 앉아 취한 뒷모습을 보려니 미안하다." ('마산에 겹치는 그림자' 중에서)

아, 그러고 성광집 근처 또 다른 선술집 옛 고모령의 주인 문자은 여사가 출판기념회 자리에 함께 있었다. 둘은 '1차가 고모령이면 2차는 성광집, 1차가 성광집이면 2차는 고모령'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예술가들의 사랑을 함께 받았었다.

"성님아 성님아 우리 소주 한잔 하자/ 소주 한잔이 연탄 두 장보다 따실 때가 있는 기라/ 섣달 매운바람 속에 주점 문 닫고 떠난/ 고모령 (중략) 바람이 데려왔네 다시 만났네/ 대동제 때에 만난 고모령과 성광집/ 석 잠 자고 넉 잠 깨어 나비 되어 만났네"('나비 두 마리' 중에서)

성광집을 그만둔 후 시인은 2010년부터 산청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 <경남도민일보>에 경남 원로 예술인을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예술청춘'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2017년 2월 13일자에 이영자 시인이 실렸는데, 당시 시인은 산청 이웃 할머니들의 사는 이야기를 시로 쓰고 싶다고 했었다. 과연 이번 시집에는 그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많다.

"할머니 콩콩 메주를 찧다가/ 절반도 못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그대로 펼쳐 놓고 병원 간 사이// 검은 고양이 들려서/ 할머니 내 간식 차려놓고 어디 가셨나/ 조금만 먹겠다고 하다가/ 고소한 맛 때문에 반이나 먹었는데// 이넘아 이넘아/ 장독에는 니가 들어앉을래 도망치는 그넘/ 고양이 쫓다가 약방에서 주는 약/ 먹지도 않았는데/ 할머니 허리는 나아버렸다/ 고양이 때문에" ('할머니 약' 전문)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택으로 지금까지 시를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이날 시인의 인사말은 감사로 시작해 감사로 끝났다. 말을 끝내고 웃는 얼굴이 그렇게 맑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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