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정신 충격 후 생긴 불안증 반복돼
약해진 자아를 보호하는 방어벽 되기도

지난 10월 올해 40주년을 맞은 부마항쟁 기념일 행사가 있었다. 피해 입은 분들에 대한 여러 사연이 방송으로 보도됐다. 필자에게는 그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같이 대화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트라우마 하면 필자에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렸을 때 물가에 혼자 있다가 둑에서 미끄러져 깊은 물에 빠질 뻔했던 기억이다. 그 기억으로 얼마 동안 불안하였다. 그리고 충격이 계속 침입하여 고통당했다. 의과대학 시절 시험을 잘못 보았고 꿈에서도 답안을 채울 수 없어 불안해했던 기억이다.

이런 충격으로도 그 기억이 침습하여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물며 세월호 생존자 같은 이들,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 모진 고문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어떠할까.

그 충격을 스스로 소화해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많은 보살핌과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그날에'라는 시에서 고문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 같이 당한 그날은'이라며 다리미로 지지는 듯하게 당한 고문을 그려내고 있다.

트라우마 혹은 외상이란 실제 당한 육체적 충격도 있겠지만 그 때문에 죽을 뻔했던 것 등 정신적 충격을 의미한다.

그 결과 심한 '불안증'이 생긴다. 침습, 회피, 생각과 감정의 변화라고 하는 외상 후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안이 생기면서 또한 그 끔찍한 충격에 대하여 반복해서 꿈을 꾸는 등의 방식으로 반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플래시백이라는 형태로 현장에서 느끼는 것 같이 경험하기도 한다.

그 끔찍한 충격이 반복되어 고통받는 '반복 강박', 이에 대하여 주목해야 한다. 왜 충격이 반복되는 것이냐는 것이다.

반복에 대한 강박은 자멸에 이를 만큼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복되는 고통으로 인하여 소진되는 것뿐만 아니라, 중독 공격성 등 여러 형태의 병행 증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이들은 술에 의존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불안을 가라앉혀줄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병적 접근이기 때문에 중독에 빠져 살게 된다.

여기서 불안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너무 과민해지는 것이 문제지, 적절하기만 하면 불안은 오히려 어떠한 것을 미리 준비하게 한다. 신경증을 일으키는 것은 불안에 대한 부분이기보다는 충격으로 인해 약해진 자아 때문이다. 자아를 준비해 충분한 방어벽이 쌓이도록 오히려 강박은 반복된다.

반복이란 시간에서 늘 있어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대에 힘겹게 갔다 온 사람은 후에 꿈에서 영장이 나와 다시 군대에 가는, 이에 놀라서 깨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꿈을 꿨다는 이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반복한다는 것은 과거를 잘 극복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자신에게로 다가갈 때에는, 과거의 충격을 안고 있는 이제껏 존재해오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 가능성을 실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이 바로 현재다.

가능성을 실현하는 순간이란 불안한 것이고, 그래서 정면으로 보기 힘들고 대부분은 피하면서 보게 된다. 이때 그 불안을 그대로 놔둘 수 있으면 과거 충격은 가능성이 되며 극복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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