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곳간, 지붕으로 중요성 강조...쌀 5000석 보관할 수 있는 규모
사당, 단청·원기둥 예외적 사용...삶의 공간과 분리하려 담 둘러
안사랑채, 아담하지만 격식 갖춰...경제권 넘긴 시어머니 생활공간

정문을 지나 사랑채와 안채를 살펴보았다. 각각 모두 마당을 중심으로 사면을 둘러싼 형태이고, 외형적으로는 독립된 공간이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구조도 있었다. 오늘은 이 공간 너머를 살펴보려 한다.

▲ 일두고택 구조도
▲ 일두고택 구조도

◇큰 곳간

안채 공간이 끝나고 사랑채로 넘어가려는 길을 큰 건물 한 채가 가로막고 있다(사진1). 보통은 그냥 휙 지나치겠지만 무언가 외형이 다르다. 잠시 살펴보자.

▲ 큰 곳간 전경. 큰 곳간은 안채공간의 바닥면보다 한 단계 낮춰 조성한 모습을 기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은 용마루에서 처마로 이어지는 우진각지붕이다. 벽은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나무판재로 만들고 윗부분은 회로 마무리했다. 아랫부분에 있는 문에는 창살이 없어 멀리서 보면 벽과 구분이 어렵고 윗부분의 창은 살로만 마무리해 안이 들여다 보인다.  /문화재청
▲ 큰 곳간 전경. 큰 곳간은 안채공간의 바닥면보다 한 단계 낮춰 조성한 모습을 기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은 용마루에서 처마로 이어지는 우진각지붕이다. 벽은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나무판재로 만들고 윗부분은 회로 마무리했다. 아랫부분에 있는 문에는 창살이 없어 멀리서 보면 벽과 구분이 어렵고 윗부분의 창은 살로만 마무리해 안이 들여다 보인다. /문화재청

일단 가장 큰 차이는 지붕이다. 일반적인 맞배지붕도 아니고 사랑채, 안채에 적용한 팔작지붕도 아니다. 네 모서리(우주)에 각을 준 지붕, 우진각지붕이다(1월 14일 자 목조건축 3편 참조). 이론적으로 우진각지붕은 만들기가 가장 어려워 아주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중국 자금성 태화전같이 나라를 대표하거나 일본 동대사(東大寺)의 정창원(正倉院)같이 보물을 보관하는 건물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이나 중요한 건물의 출입문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전자의 예로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이 있고 후자의 예로는 광화문, 돈화문 등이 있다. 그럼 일두고택에서 보이는 우진각지붕을 한 건물은? 큰 곳간이다.

일반 사대부 집에서 곳간은 담장 대신 공간을 구획하는 보조적 역할도 했다. 사랑채 권역을 봐도 중심건물이 평면 'ㄱ'자 형이니 나머지 두 면을 막을 구조물이 필요했고 한쪽은 담, 한쪽은 곳간을 사용했다. 안채도 마찬가지이다. 안채, 사랑채가 한 방향씩 담당하고 나머지 두 면은 아래채와 곳간이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일두고택에는 이 두 곳간 말고도 안채의 뒷마당에 정면 5칸, 측면 2칸 즉 10칸의 큰 곳간채를 하나 더 마련한 것이다. 고택의 경제적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이례적인 시설이다.

▲ 안채마당에서 보이는 큰 곳간은 안채공간의 바닥면보다 한 단계 낮춰 조성한 모습을 기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은 용마루에서 처마로 이어지는 우진각지붕이다. 벽은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나무판재로 만들고 윗부분은 회로 마무리했다. 아랫부분에 있는 문에는 창살이 없어 멀리서 보면 벽과 구분이 어렵고 윗부분의 창은 살로만 마무리해 안이 들여다 보인다. /문화재청
▲ 안채마당에서 보이는 큰 곳간은 안채공간의 바닥면보다 한 단계 낮춰 조성한 모습을 기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은 용마루에서 처마로 이어지는 우진각지붕이다. 벽은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나무판재로 만들고 윗부분은 회로 마무리했다. 아랫부분에 있는 문에는 창살이 없어 멀리서 보면 벽과 구분이 어렵고 윗부분의 창은 살로만 마무리해 안이 들여다 보인다. /문화재청

후손의 말에 따르면 이 곳간에는 약 5000석 정도를 넣을 수 있었다 한다. 쌀 한 석(석은 섬과 같은 말이다)은 약 144㎏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논 한 평당 쌀 1.8㎏이 생산된다고 한다. 1000석을 생산하려면 지금 기준으로도 논 8만 평이 필요한 엄청난 양이었다(<농업경제신문>, '만석꾼 천석꾼', 2017.4.26). 당시의 생산량은 지금보다 적었을 테니 더 넓은 논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건물 하나를 가득 채우려면 40만 평 이상의 논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이곳이 곳간임을 알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아이템이 있다. 벽에 나 있는 창이다. 일반 살림집에는 빛이 통할 수 있는 창살문·마루 등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곳간 문은 살이 없이 판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벽의 윗부분의 창은 창호지로 마감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통하는 게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큰 곳간채 왼쪽(방위로는 서북쪽)으로 보이는 단정한 단청집으로 간다. 사당이다.

◇사당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집안에 모신 묘,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국가의 묘는 종묘(宗廟)이다. 당연히 유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려말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제대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반 사대부집에 일반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이다.

사당은 집의 가장 안쪽, 그리고 서쪽에 놓는 것이 원칙이었다. 실제로는 집안의 가장 안쪽에 배치하긴 했지만 방위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방위의 중심은 안채였다. 일두고택만해도 서쪽에 있으려면 사랑채 부근에 있어야 하는데 정문이 사랑채 쪽에 있으니 이러면 건물의 가장 안쪽에 배치할 수 없었다. 가장 안쪽에 있어야 하느냐? 서쪽에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가장 안쪽에 있어야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 사당 전경. 전면에 단청을 한 아담한 맞배지붕집이다. 네 면을 담장으로 둘러 생활공간과 구분했다. 가장 앞쪽에는 원기둥을 사용했다.  /문화재청
▲ 사당 전경. 전면에 단청을 한 아담한 맞배지붕집이다. 네 면을 담장으로 둘러 생활공간과 구분했다. 가장 앞쪽에는 원기둥을 사용했다. /문화재청

그리고 사당은 집 안에 있지만 반드시 담을 둘렀다. 사당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공간이다. 삶의 공간은 집이고 죽음의 공간은 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무덤은 산으로 갔고 집은 산을 등진 평지로 나왔다. 그 중간이 사당이다. 그래서 사당은 최대한 평지와 떨어졌고 산에 접해서 있어야 했다. 일종의 중간지대이다. 이곳은 제사라는 매개로 조상과 소통하기 위한 곳이다. 제사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생활의 한 부분이어야 했다. 그래서 유교적 의례에서 장례는 흉사(凶事)였지만 제사는 길례(吉禮)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한 삶의 공간은 아니니 담장을 둘러 삶의 공간과 구분했다.

또 하나 사당은 이렇게 중요한 건물임에도 팔작지붕을 얹지 않고 맞배지붕을 올린다. 제사에 앞서 의관을 정제하듯 조상과 소통할 필요가 있으니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것을 단정한 맞배지붕으로 표현했다. 사당만큼은 경제적 이유로 맞배지붕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다음 마지막으로 단청을 해서 건물의 격을 높였다. 단청 역시 원기둥과 마찬가지로 일반 살림집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예외적으로 사당만은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중요한 건물이다 보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큰 곳간에 별도로 건축적인 조치를 하나 더 했다. 곳간의 대지를 낮게 만들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자그마한 건물이다. 하지만 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큰 건물이다. 같은 대지에 만든다면 곳간 규모가 사당을 압도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 곳간의 대지를 사당의 마당보다 낮춘 것이다. 사실 이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곡식들은 습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주변보다 낮춰 만들면 자연스레 물이 모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곳간의 대지를 낮추면서 습기를 대비하려고 기단 아래 자갈과 숯을 묻어 습기를 대비했고 건물 주변으로는 배수로도 설치했다.

◇안사랑채

이제 고택의 마지막 여정이다. 사당과 광채(큰 곳간)를 보고 동쪽으로 나오면 다시 번듯한 살림집 한 채가 나온다. 안사랑채이다. 이 공간은 조선 후기 영남지방에서 먼저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세대교체 방식과 관련이 깊다. 영남지방에서는 아들이 장손을 낳고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경제권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할머니가 기거하는 공간이 필요했는데 안사랑채가 그 역할을 했다.(서윤영,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 서해문집, 2012). 일두고택에서도 할아버지가 사랑채, 할머니가 안사랑채를 사용하면서 아들 내외와 자손들은 안채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사랑채나 안채보다 규모는 작지만 갖출 격식은 다 구비한 멋진 건물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주인공 애신 아씨(김태리 분)가 사용한 공간이 이 안사랑채이다.

▲ 안사랑채 전경. 사랑채나 안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팔작지붕, 대청, 이중기단 등을 구비한 품격있는 건물이다. 일두고택에서는 주로 할머니가 기거한 곳으로 영남지방 양반가의 독특한 구성요소다.  /최형균
▲ 안사랑채 전경. 사랑채나 안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팔작지붕, 대청, 이중기단 등을 구비한 품격있는 건물이다. 일두고택에서는 주로 할머니가 기거한 곳으로 영남지방 양반가의 독특한 구성요소다. /최형균

이 안사랑채를 지나 담을 따라 돌면 사랑채 마당이 다시 나온다. 우리의 여정은 마당을 지나 문앞으로 나가면서 마무리된다. 이렇게 휙 살펴보는데 4편의 글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구석 곳곳을 살펴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 글을 읽었음에도 막상 고택에 가보면 그냥 5∼10분 둘러보고 나올 수도 있다. 아무리 봐도 이 건물이나 저 건물이나 다 비슷해 보이기만 하고 함양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큰 차이도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연재를 시작할 때 필자가 말한 대로 우리는 목조건축의 구성요소와 그 원리에 대해 알아보았고 실제 적용 사례를 절집, 궁궐, 살림집을 오가면서 살펴보았다. 이제는 여러분의 몫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그냥 집 한 채가 아니라 그 속의 여러 요소를 구분해보고 다양한 사례들을 비교하다 보면 왜 이것은 이런 식으로 만들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되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하는 희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발이 어렵지 한 발을 떼고 보면 생각보다 쉽게 다른 내용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