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포퓰리즘·폭력·온난화까지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은 개인의 '식욕'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소한 것들을 틀어쥐고 요리조리 조종하는 것은 습관이다. 결국 인간은 습관의 노예다. 그 습관 중에서 가장 무섭고 강한 것이 먹는 습관인데, 수면욕·성욕과 함께 인간 욕망을 이루고 있는 식욕을 흔히 근본 욕망이라고 부른다.

수면욕과 성욕은 인간의 정신과 사회적 관계에 의해 어느 정도는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식욕은 가장 질기고 강해서 웬만해서는 통제나 관리가 어렵다.

고대 중국 정치 철학자 맹자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食以爲天)"라 한 것도 인간의 식욕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말한 것이다.

한국인의 속담에도 '금강산도 식후경' 즉 아무리 좋은 것도 배불리 먹고 난 뒤에라야 제대로 보이고, 들리고,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회생활 중에 "밥 한번 먹자"는 말에도 인간관계를 만들고 잘 유지해 갈 수 있는 오래된 인간의 경험이 살아있는 현장을 만들고 있음이다.

좀 엉뚱하지만, 식욕 문제의 가장 오래된 정치사가 자유민주주의 또는 대의민주주의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현실화 사회화시킨 것이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였다.

21세기에 이르러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가장 크고, 급박한 위험이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단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인간들은 애써 그 지적을 외면하거나 듣고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4차산업과 신기술 개발을 내세워 이 뿌리 깊은 모순과 폐단의 위험을 덮어보려고 몸부림친다. 이 위험을 깨달은 철학자들이 외치는 경고를 인간들은 그냥 재미있는 코미디처럼 중얼거린다.

"현대인의 꿈은 거대 기업이 생산하는 신제품을 사서 즐기는 소비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참으로 미묘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 말에 현시대를 사는 모든 인간의 비극적 종말과 지구의 종말이라는 엄청난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민주주의는 인간 개인이 자신의 삶과 사회관계의 주체임을 믿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노예와 주인,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권력 관계가 옳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삶과 죽음을 영위함과 결정할 때 결정 방법이 자신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도 그 선택에 틀린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대의민주주의는 이 같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하는 주체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는데, 이 충돌을 미리 막거나 조절하여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 마련이 필요해진다. 이 필요성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실현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 행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위임하여 제도화한 것이다. 

이렇게 개인 권리를 위임하고, 위임받는 과정의 공정을 위해 마련된 것이 투표인데, 이른바 다수결 원리에 의해 한 표라도 더 많은 쪽이 개인들의 권리를 대리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약속한 것이다. 오늘날 저 괴물집단으로 변질하고 있는 국회의원, 시·군·도의회 의원들이다. 이들의 핵심 역할은 개인들 삶에서 필요한 이익과 편리를 위해 법과 제도 장치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기된 '개인들 삶에 필요한 이익과 편리'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최종적인 이상이다. 이 이상을 생활 속에서 창출하고, 키우고, 유통하고, 확장하는 것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다. 인간은 이익과 편리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계속되기를 원하는 욕망 동물이다. 이익과 편리가 커지는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속도, 그리고 빠른 것, 점점 더 빠른 것이다. 이 속도의 무한 질주가 지금 시대의 '5G'다. 어 빨라질 것이다. 죽음에 이르도록.

그리고 인간은 더 편하고, 더 안락하며, 더 포식하는 삶을 위해 절제 없는 욕망을 부르짖고, 대의민주주의를 경영하는 대리자들은 '복지제도'라는 블랙홀을 만들어 개인들의 욕망에 불을 질렀다. 복지, 복지가 점점 커져서 이른바 '포퓰리즘'이 되고, 이 무한의 이익·편리·속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구 자원이 수탈되기 시작하여, 땅·공기·햇빛·물·바다·산이 죽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지구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되고, 지구온난화, 수질 오염, 대기 오염, 그리고 에너지 고갈, 치유 불능의 질병이 등장하고, 핵과 폭력이 종교와 예술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이 모든 재앙이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한 개인들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너무나 작고, 사소한 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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