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장 찍고 돈봉투 주고 머리 수 품앗이
정치인 출판기념회 '생각 나누는 자리'로

바야흐로 출판기념회 계절이 돌아왔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신호다. 여기저기에서 너도나도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선거법상 '출마합니다'라고 대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은근슬쩍 소리 없는 유세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느 북 콘서트와 목적이 달라서일까? 이맘때 출판기념회는 대부분 책은 있지만 책 내용이 없고, 저자는 있지만 글쓴이가 없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마치 결혼식과 비슷하다. 다른 듯 닮았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돈 봉투를 준비한다는 것이 닮았다. 결혼식은 돈 봉투를 내밀고 식권을, 출판기념회는 책을 받는 차이만 있을 뿐 봉투 속 액수도 거의 비슷하다.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 심지어 미처 돈만 들고 봉투를 준비하지 못한 손님들을 위해 로비 한쪽에 봉투는 물론 이름을 적는 사인펜을 준비해 두는 것까지 똑같다.

출판기념회와 결혼식의 닮은 점 두 번째는 손님들의 분위기다. 두 곳의 손님은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오지 않고 돈 봉투만 보내는 사람. 가기엔 덜 친하고 모른 체하기엔 더 친한 부류들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 부류는 오긴 왔으나 주례가 누구인지, 책 내용이 무엇인지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안부이다. 신랑·신부 혹은 저자에게 눈도장만 찍으면 그만, 로비에서 지인들과 스탠딩 대화를 즐기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 부류는 끝까지 남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다. 결혼식은 일가친척과 친구가, 출판기념회는 적극 지지자들이 저자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판에 박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 또한 출판기념회와 결혼식이 비슷하다. 후배·친구, 심지어 나의 결혼식일지라도 대한민국 결혼식은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많다.

출판기념회 또한 마찬가지. 저자만 다를 뿐 행사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직접 오지 못한 정치인들의 축하 영상과 직접 찾아온 정치인들의 내빈소개가 거의 주를 이룬다. 공연 또한 마찬가지. 춤을 추거나 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장르만 다를 뿐 그 식순은 거의 똑같다.

많이 하고 싶어도 그 횟수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출판기념회와 결혼식은 닮았다. 내 평생 한 번 뿐인 결혼식이라는 말이 있듯 대부분 사람은 1인 1결혼식을 선호한다. 물론 많이 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할 때마다 처음의 결혼식처럼 하객을 초청하기란 쉽지 않다. 출판기념회 또한 마찬가지. 정치인으로서 더는 꿈과 희망이 없을 때 자의든 타의든 출판기념회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아니, 이쯤 되면 불러도 아무도 안 갈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닮은 점은 손님들끼리 품앗이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자신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다른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찾는 건 당연지사.

이 지역구 당원이 저 지역구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자리를 채워주고, 저 지역구 당원들이 또 다른 지역구 자리를 채워주는 품앗이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요즘, 출판기념회 계절이 돌아왔다. 혹자는 출판기념회를 폄훼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출판기념회는 중요하다. 특히, 빽도 줄도 돈도 없는 정치 신인들에게 출판기념회는 기회가 된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뻔한 출판기념회는 곤란하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 출판기념회,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을 기다리게 하는 출판기념회 계절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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