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희생 69년 만에 김해 진영서 첫 학술세미나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로 희생당한 고 강성갑 목사의 삶과 농촌 교육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뜻을 되새기는 시간이 김해에서 마련됐다.

'한얼학교 설립자 강성갑 선생 학술세미나'가 한얼학교 총동창회·강성갑 선생 기념사업회 주최, (사)경남향토사연구회 주관으로 지난달 29일 김해 진영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선생이 3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내년이면 70주기가 되지만 그동안 그의 삶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재조명하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세미나에서 홍성표 연세대 국학연구원 박사가 '강성갑 선생의 생애와 업적'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홍 박사는 "이 땅에 새 나라를 세우고자 노력하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희생당한 그의 실천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은 이념 문제뿐만 아니라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 있다"며 "그가 활동했던 해방공간은 일제로부터 벗어나 새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꿈꾸고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것처럼 강성갑의 실천은 오늘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1912년 의령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마산공립상업학교와 연희전문대학원(현 연세대)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1946년 진영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나서 1950년 8월 2일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낙동강 수산교 아래에서 총살당하기까지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난한 농촌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교육에 있다는 신념을 갖고 활발한 사업을 진행했다.

1946년 진영 복음중등공민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1948년 3·1학원을 설립하고 한얼초급중학교를 세웠다.

같은 해 목사직을 내려놓은 강 선생은 1949년 한얼중학교 진례분교와 녹산분교(현 녹산중)를 설립하며 교육사업에 더욱 매진했지만 결국 억울한 죽음으로 뜻을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

▲ 지난달 29일 김해 진영문화센터서 열린 고 강성갑 선생 학술세미나 모습. /이현희 기자
▲ 지난달 29일 김해 진영문화센터서 열린 고 강성갑 선생 학술세미나 모습. /이현희 기자

이 같은 선생의 삶을 소개하며 홍 박사는 "강성갑이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을 되살리는 일은 의미 있는 대안이어서가 아니라 '꿈' 자체가 대안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종봉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강성갑 선생의 학문·교육적 사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선생이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며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적 사상을 가지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민족주의적 성향의 인물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교육 문제를 지적하며 인문 중심에서 기술 교육으로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는 사실에서 선생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고 요약했다.

이어진 토론은 송종복 경남향토사연구회장이 좌장을 맡고 기념사업회 심용주 상임부회장, 밀양고 손경순 교장, 의령문화원 이종록 이사가 주제발표자와 함께 선생이 꿈꿨던 세상을 오늘에 되살리는 논의를 펼쳐갔다.

토론자들은 선생이 서울이 아닌 '진영'이란 지역에서 꿈을 펼쳤던 것처럼 선생 개인이 아니라 지역 가치를 되살리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기념사업회는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현재 진영지역 교육기관 중심인 한얼중·진영여중·진영고 3개 학교가 시작된 한얼학교 설립자 강 선생의 삶과 사상을 지역사회에 널리 알리고 추모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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