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글을 많이 쓰고 사물보다 사람에 집중
문장은 짧고 간결…묘사는 구체적으로 해야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에서 밤밭고개를 지나 덕동으로 가는 길 주변으로 촘촘하게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있다. 최근 가파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는 현동이다. 2008년 2500명이던 인구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 1만 5000여 명으로 늘었다. 시골 마을뿐인 이곳에 현동 보금자리 주택 지구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변화다. 올해 3월 현동으로 이전한 구산중학교가 이 극적인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학생이 줄어 37년간 구산분교로 유지되던 이 학교가 최근 학생이 대폭 늘면서 구산중학교란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에 유일 문화공간인 현동작은도서관 내부. /이서후 기자
▲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에 유일 문화공간인 현동작은도서관 내부. /이서후 기자

◇현동 유일 문화공간 = 현동행정복지센터 2층에 있는 현동작은도서관은 현동에 유일한 문화공간이다. 지난해 1월 개장했는데, 한지 창문, 한옥 문살로 된 입구가 인상적이다.

지난 22일 오후 2시 현동작은도서관 3층 강당에서 정철 작가를 초청해 작가와 만남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 창원시 한마을 한 책 읽기 추진위원회 활동의 하나로 마련된 자리다.

정철 작가는 경력 33년차 카피라이터다. 만날 남의 이야기로 문장을 만들다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 머리 사용법>(리더스북, 2009년), <머리를 9하라>(리더스북, 2013년), <한 글자>(허밍버드, 2014년), <틈만 나면 딴 생각>(인플루엔셜, 2018년) 등 20여 권의 책을 썼다. 카피라이터 특유의 짧고 쉬운 글로 이뤄진 책들이다.

이날 정 작가는 글을 효과적으로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듣다 보니 카피라이터 수업 같기도 했고, '스타일 있는' 글쓰기 강좌 같기도 했다.

거진 알려진 방법이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했기에 글을 쓰다 문장이 자꾸 꼬이는 이들, 어떻게 써도 글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이거다' 싶은 조언이었을 것이다.

▲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작은도서관에서 글쓰기 조언을 하는 정철 카피라이터 겸 작가. /이서후 기자
▲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작은도서관에서 글쓰기 조언을 하는 정철 카피라이터 겸 작가. /이서후 기자

◇사람 이야기의 힘 = '일단 쓰자'가 그가 제시한 첫 단계다. 처음부터 잘 쓸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 말고 일단 많이 써 보자는 거다. 정 작가는 양은 틀림없이 질로 바뀐다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다르게, 낯설게, 나답게'란 자신만의 요령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설명했다.

먼저 정 작가는 사람 이야기의 힘을 강조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이야기는 사람 이야기다. 가장 힘 있는 이야기도 사람이야기다. 울림이 크고 진한 이야기도 사람이야기다."

얼핏 공고 문구를 쓰는 요령 같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게 좋은 글을 쓰는 요령인 건 확실하다. 정 작가가 제시한 다음 예를 보자.

"아파트 코앞에 초고층빌딩이 웬 말이냐! 시민의 삶 짓밟는 ○○건설은 각성하라!"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 현수막이다. 장 작가는 이걸 이렇게 바꾼다.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

이건 실제 사례인데, 정 작가가 만든 이 문구가 현수막으로 걸리자 TV 방송에도 소개가 되면서 결국 초고층 빌딩이 햇볕을 가리지 않을 만큼 비켜서 지어졌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이 카피에 반응을 했을까. 결국, 사물보다 사람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 작가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 "글자로 그림을 그려라." 정 작가의 카피 작법 제1조 1항이다. 요즘 유행하는 캘리그라피 이야기가 아니다. 글을 구체적으로 쓰라는 말이다. 독자가 머릿속으로 바로 그림이 그려지도록 써야 한다. 글쟁이의 실력 차이는 여기서 드러난다고 정 작가는 강조했다.

예컨대 '화장실을 깨끗이 씁시다'와 '반 발짝만 앞으로 오세요', '예쁘다'와 '김태희 스무 살 때 같네', '꼼꼼하다'와 '손톱 열 개 깎는데 꼬박 20분을 투자한다'의 차이를 알아차린다면 이 말을 잘 이해한 것이다.

모든 문장이 구체적일 수는 없지만, 몇 부분이라도 제대로 구체적으로 그려지면 독자의 인상에 오래 남는다.

예컨대 한 놋그릇 회사 광고 문구는 이렇다. '전통의 혼 조상의 소중한 문화유산'. 전통, 조상, 문화, 유산. 좋은 말은 다 들어가 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쉽게 그림이 그려지는 단어는 아니다. 정 작가는 이런 단어가 들어가지 않지만 이런 단어의 뜻이 드러나게 써야 한다며 다음처럼 고쳤다. '오늘은 황희 정승과 겸상입니다.'

일단 한 번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면 느낌이 오래간다. 이게 구체적인 글의 힘이다.

구체성과 관련해 정 작가는 가수 정태춘의 가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예를 든 건 1993년에 나온 6집 앨범 수록곡 '92 장마, 종로에서'였지만, 이 앨범에서 구체적인 표현의 압권은 'LA 스케치' 가사다.

"해는 기울고 한낮 더위도 식어 아드모어 공원주차장 벤치에는 시카노들이 둘러앉아 카드를 돌리고 그 어느 건물보다도 높은 가로수 빗자루 나무 꼭대기 잎사귀에 석양이 걸릴 때 길옆 담벼락 그늘에 기대어 졸던 노랑머리의 실업자들이 구부정하게 일어나 동냥 그릇을 흔들어댄다 커다란 콜라 종이컵 안엔 몇 개의 쿼터, 다임, 니켈 (후략)"

▲ 정철 카피라이터 겸 작가의 책과 현동작은도서관에서 준비한 질문지. /이서후 기자
▲ 정철 카피라이터 겸 작가의 책과 현동작은도서관에서 준비한 질문지. /이서후 기자

◇싹둑싹둑 잘라라 = "본문을 쓸 때는 연필을 놓고 부엌칼을 든다."

문장을 짧게 쓰라는 뜻으로 한 마지막 정 작가의 조언이다. 긴 글에서 문장들은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툭, 툭, 툭, 툭 이렇게 가야 한다.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멀면 문장이 꼬이고 읽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이 기사의 문장에서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정철 작가의 강의 내용을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거진 알려진 방법이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했기에 글을 쓰다 문장이 자꾸 꼬이는 이들, 어떻게 써도 글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이거다' 싶은 조언이었을 것이다."

여러 개 문장을 붙여 한 문장을 만들어 놨으니 뭔가 복잡해졌다. 싹둑싹둑 잘라보자.

"거진 알려진 방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해서 이해가 쏙쏙 잘 됐다. 특히, 글을 쓰다 문장이 자꾸 꼬이는 이들, 어떻게 써도 글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이거다' 싶은 조언이었을 것이다." 자, 이제 독자 여러분이 직접 해볼 차례다. 일단 글부터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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