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상담창구 서울에 집중
복잡한 인정 절차에 포기도
"전수조사 등 능동적 발굴을"

가습기 살균제로 말미암은 폐암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두 명이 숨졌다.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람은 약 400만 명에 달하고, 건강 이상 증상을 겪은 사람은 약 5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피해 신고자는 8년간 6649명(11월 22일 기준)에 그치고 있다. 이 중 사망 신고 접수는 현재까지 1460명으로 늘었다. '피해 신고 방법을 몰라서', '신고 대상인지조차 몰라서' 사망하는 사람이 없도록 주민 접근성이 높은 지방자치단체가 피해자 발굴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창녕군에 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서모(62) 씨는 최근 건강 피해 인정을 받았다.

서 씨는 "피해 신청을 하고 5개월 만에 노출 확인자로 인정받았고, 14개월 만에 구제 급여 대상을 인정받았다"면서 "건강피해 등급(질환 중증도)에 따라 지원 내용이 달라 심의자료를 또 제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이 복잡해 중도포기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는 게 서 씨의 설명이다.

서 씨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피해조사실에 문의해 피해 신고를 해도 다음 과정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상담하는 곳이나 피해 인정을 결정하는 곳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보니 지역에서는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2016년 정부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담당자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책을 논의하며 자치단체에 '피해 접수창구' 운영을 제안했다. 당시 경기·전북·전남·광주·성남시에서 피해 접수창구를 운영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하다. 경기도 환경보건팀은 "잠시 운영했지만 환경부로 업무 전체가 이관되면서 안내 역할만 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는 명패를 달고 있지만 접수창구 역할은 못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한승주 조사관은 "피해자들로부터 전화로 신고 받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와 도봉구를 대상으로 피해자 찾기 예비사업을 진행한 데 이어 올해는 수원시와 협약을 맺어 피해자들을 찾아 나섰다. 효과는 컸다. 수원시 4개구 가운데 아파트가 밀집된 영통구에 학교 절반이 모여 있다. 영통구청과 교육청 협조로 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 4000여 명을 신규 발굴했다. 조사 대상자인 2만 7000가구 중 2만 2000가구가 참여했고, 응답자 21%가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신고를 전혀 몰랐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이 넘어 해당자에게 정보를 주고, 피해자 발굴 후 접수까지 연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양진하(더불어민주당) 수원시의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발굴과 검사 비용을 지원하는 조례를 준비하고 있다. 양 의원은 "여전히 많은 시민이 피해 신고 방법을 모른다. 건강한 사람도 10년, 20년 뒤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조례를 제정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남도는 도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현황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

경남은 9월 말 기준 266명이 피해 신고를 했고, 이 중 사망자는 61명이다. 피해 신고자 중 240명이 판정을 받아 20명이 구제 급여를 받고 있고, 108명이 특별구제계정으로 지원받고 있다. 120만 인구 수원시와 규모가 비슷한 100만 인구 창원시는 피해자 현황도 모르고 있다.

도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국가 재난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단일 창구를 만들어 피해를 접수, 지원하고 있다"며 "지자체로 업무를 이관하면 시·도마다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야하고, 지역별로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따를 수 있다"고 했다.

한승주 조사관은 "서울로 문의가 집중되면서 피해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가 있는데, 지자체에서 피해자를 발굴하고 신고 접수를 돕는 것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시와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찾기 사업 예산이 총 3억 원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매칭사업으로 전수조사 등을 진행한다면 지자체에서도 큰 부담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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