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희 작가 등 올해 12명 등단
각자 다양한 삶 글 속에 오롯이

글을 쓰는 일이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겠다. 백남오 수필가가 지도하는 경남대 수필교실 수강생 중 올해 등단한 수필가 12명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등단 작품이니 으레 잘 썼겠거니 하고 읽었는데, 뜻밖에 감동적인 구석이 많았다. 이 정도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았을까 싶은 글도 있었다. 독자뿐 아니라 작가 자신까지 위로하는 글의 힘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수필을 쓰는 사람들

백남오 수필가는 현재 경남대 학부와 평생교육원, 합천군 이주홍문학관에서 주·야간 5개 반 100명을 지도하고 있다. 수강생은 학부생을 제외하면 대부분 제법 많은 삶을 살아낸 40대에서 60대 중장년이다. 전업 주부에서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 회장까지 이력도 다양하다. 이런 이들이 매주 모여 서로 쓴 글을 읽고 평가를 주고받는다.

백남오 수필교실에서는 매년 2∼3명, 많게는 7∼8명씩 등단을 한다. 올해는 유달리 등단한 작가가 많았다. <서정시학> 신인상 강선희 작가와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조경숙 작가를 포함해 문예지 신인상으로 <에세이스트> 정문정, 배종은, 박영순 작가, <수필과 비평> 송순애, 석위수, 이지영, 이장수 작가, <한국수필> 하인호, 김순득 작가, <문학세계> 서정욱 작가 등 12명이다.

◇글쓰기의 힘, 위로

작가라는 게 꼭 등단을 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꾸준히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이미 훌륭하다. 온 생을 바쳐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태생적인 작가들이 있다. 이들에게 글은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어떤 것일 테다. 보통 사람에게 글쓰기란 애써 다가가야 하고, 산을 오르듯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는 일이야말로 글쓰기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글을 통해 삶의 고통과 슬픔을 객관화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위로를 얻는 게 가능하다. 이런 위로가 수필가 12명의 당선작 곳곳에서 발견된다.

"죽을힘을 다했지만 출항한 지 1년 만에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수억의 재산을 깊은 바다가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그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눈앞이 캄캄한데 보험도 들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는 또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고 죽기 살기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정문정, <에세이스트> 2019 1/2월호 등단작 '나무 아래 앉아서' 중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

요즘은 문화예술을 소비하기보다 창작하려는 욕구가 더욱 두드러지는 시대다. 젊은이들 사이에 소규모 독서모임이나 독립출판이 유행하고 중장년들이 각종 문학교실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형식이든 보통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삶의 이력을 풀어놓은 글 자체가 훌륭한 문화 자산이다. 다음과 같은 글을 보자.

"나는 용감한 여자다. 왜냐하면 시댁식구들과 첫 식사자리에서 밥상에 숟가락을 탁- 하고 세게 두드리며 놓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시아주버님 세 분과 도련님, 시누이 두 사람 모두가 놀라서 쳐다본다. (중략) 첫 숟가락 뜰 때부터 옆집 강상아재 게으른 이야기, 무능한 어느 집 아들 소식 등 모두 한 마디씩 남 욕을 해대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거기다 좋은 말도 아니고 남 못한 얘기만 하니 여기서 끊는 게 좋겠다 싶어서 정의의 사도마냥 밥상을 세게 쳐 버린 것이다." (강선희 <서정시학> 여름호 등단작 '시아버지 길들이기')

지난 16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아리랑호텔에서 백남오 수필교실 올해 등단 작가 12명 공동 축하식이 열렸다. 이들이 등단 작가라는 '명찰'보다 글쓰기 자체를 즐기며 위로받고 또 위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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