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50수엔 두지 않는 '사망선'
초보는 큰집 지을 수 있다 착각
삶의 선은 포용 폭 넓은 세력선

바둑판에는 가로와 세로, 열아홉 줄의 선이 있다. 외곽을 이루는 선과 두 번째 선은 사망선과 패망선으로 불리며 특히 사망선에는 초반 50수 내에 거의 두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둑은 집짓기로 승패를 겨루는 게임이므로 집짓는 데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일화 한 가지가 있다. 신이 한 남자에게 제안을 했다. 동틀 무렵 출발해서 석양이 질 무렵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그 땅을 전부 사내에게 주겠다고 했다. 이에 득의만면한 웃음을 머금고 출발한 사내는 석양이 진 다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욕심으로 인해 미처 제 시간 안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바둑판에 첫 수를 놓으면 출발이다. 상대도 뒤이어 출발한다. 한 수씩 번갈아가며 돌을 추가해 자신의 경계를 만든다. 경계에는 분쟁이 따르기 마련이다.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과 마찬가지로 일정 선을 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툼이 일어난다.

이러한 다툼에서 힘의 우위를 점한 대국자(바둑 두는 사람)가 승리한다. 기력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맞두어서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둑 강의를 하다보면 첫 판에 대부분 맨 끝의 외곽선에 아무렇지 않게 두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외곽으로 놓아 더 큰 집을 만들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는 혼자만의 이기적인 생각이다. 상대의 생각이나 의도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마치 탈무드에 나오는 저 사내처럼 욕심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초반 50수 정도를 포석이라고 하는데 사전적으로는 '처음에 돌을 벌여 놓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바둑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바둑돌을 놓아두고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순장바둑을 이르는 표현으로, 적확한 의미는 '집을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돌을 기둥처럼 놓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기둥으로 집의 틀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집을 짓는 원리와 바둑에서 집을 짓는 요령은 같다. 기둥의 거리가 너무 멀면 지붕이 무너지기 쉽고 너무 가까우면 효율적이지 못하다. 또한 기둥의 길이가 몽당연필처럼 짧으면 집을 크게 지을 수 없다. 초반에 사망선과 패망선에 돌을 놓는 것은 몽당연필로 대궐을 지으려는 것과 다름없다.

삶의 선은 세 번째 선과 네 번째 선인 실리선과 세력선이다. 실리선과 세력선에 놓인 돌은 여간해서 잡기 어렵다. 한쪽에서 공격해 오면 다른 쪽으로 두 칸을 벌리면 되니까 말이다. 또 다른 쪽에서 공격하면 중앙으로 한 칸 뛰면 된다. 중앙에 놓는 돌은 발전방향이 많아 여간해서 공격하기 쉽지 않다. 초반에 상대가 사망선과 패망선으로 침입해 들어온다면 잡아도 되지만 살려주어도 무방하다. 사망선과 패망선에 돌을 놓은들 크게 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안에 집을 만들어봐야 얼마나 크게 지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선들은 집을 짓기에 가장 효율적이다. 네 번째 선인 세력선도 마찬가지다. 집짓기에 효율적일뿐더러 중앙으로의 발전성이 높다. 세력선에 놓인 돌을 공격하기란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공격을 택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의 실리선이나 세력선에 두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다.

그럼, 실리선 56곳과 세력선 48곳 중 어디에 돌을 놓아야 할까. 석양이 지기까지 반드시 돌아와 신으로부터 자신의 땅을 차지하고 싶지 않은가. 그러려면 변방에서 시작해야 한다. 중원을 넘나들던 기마민족 우리 조상들처럼 말을 타고 달려보자. 광활한 대륙을 호령해보자. 여기서의 말은 바둑돌을 뜻하고 대륙은 바둑판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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