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인 한자리에 모여 현장 고민·결과물 공유 올해 주제는 '아카이브'
대회 발표자로 참가해 기록원 설립과정 설명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참' 좋아한다. 때문에 차가운 바람이 불 때부터 기분이 좋아지는데 감나무에 감이 익어 바닥으로 떨어지듯, 토실토실 알밤이 밤송이를 밀고 낙엽 위로 투툭 떨어지듯, 흥겨운 내 기분은 자연스럽게 주위에 전파되곤 한다.

기분도 이러할 진대, 기록인들의 축제, 전국기록인대회도 가을에 열린다. 기록인으로서, 개인 '전가희'로서도 즐거운 일이다. 전국기록인대회는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 11번째를 맞이한 전국적인 기록관리 학술대회이다.

그동안의 대회를 주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1회 기록관리, 내일을 연다(2009년), 제2회 기록관리 전문성을 말하다(2010년), 제3회 기록관리의 사회적 책임(2011년), 제4회 소통, 거버넌스, 기록관리(2012년), 제5회 기록관리, 지평의 확대(2013년), 제6회 기록관리와 민주주의(2014년), 제7회 지방을 살리는 힘, 기록관리(2015년), 제8회 기록관리 기본을 다시 생각한다(2016년), 제9회 현장에서 기록관리의 미래를 본다(2017년), 제10회 기록공동체의 오늘, '나'에게 묻는다(2018년), 제11회 '무한의 아카이브' 따로 또 같이(2019년).

▲ 지난 2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11회 전국기록인대회에 전가희 기록연구사가 참가해 발표하고 있다.
▲ 지난 2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제11회 전국기록인대회에 전가희 기록연구사가 참가해 발표하고 있다. /전가희

기록관리법(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처음 만들어진 1999년 이후 10년 동안 기록관리 선배님들이 각개전투로 고생한 결과물을 공론화하는 대회가 2009년 처음 열렸고 매년 새로운 주제로 그해의 기록관리 사안들을 총정리하면서 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각 연도 학술주제는 그해 기록인들의 공통적인 고민의 결정체라 생각한다. 모든 기록인의 합일된 주제는 아니겠지만 한 번쯤 고민해 왔을, 고민이 필요한 주제들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올해 주제는 '무한의 아카이브 따로 또 같이'라는 주제였는데 기록관과 유사기관인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의 아카이브를 함께 이야기해보고 이러한 아카이브들이 기록관과 같이 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보는 내용이었다.

대회는 지난 1∼2일 부산(부산대학교)에서 열렸고 매년 그러하듯 이틀에 걸쳐 기록학의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었다. 첫째 날에는 우수논문 시상과 함께 앞서 말했던 박물관 등의 사례를 살펴보았고 둘째 날에는 현장에서 기록관리를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고민의 결과물을 같은 길을 걷는 기록인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 총 16개 세션으로 구성되었고 기록물 보존·복원, 기초자치단체의 기록관리, 대통령 기록관리 혁신, 마을기록에 관한 내용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발표되었다. 나는 그동안 책으로만 뵈었던 오항녕 교수님의 발표를 들었다. 주제는 '時空(시공)을 넘어 만난 기록인, 사마천과 헤로도토스'였다.

▲ 지난 1일 개회식에서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지난 1일 개회식에서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전가희

요지는 동서양에서 각각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마천과 헤로도토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중이 이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를 기록(archives)이 빠진 '이야기=역사서술'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전해 내려오는 것을 간추려 정리하려 할 뿐, 창작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은 사기에 지어낸 이야기가 있다고들 했고, 그 일부 사람 중에 지식소매상이라고 불리는 유시민 작가님이 계시는데 교수님은 우스갯소리로 <알릴레오>에 나가 같이 토론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는 1차적으로 기록인, 아키비스트였다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흔히 지어낸 이야기처럼 들리는 그들의 서술은 당시 심문기록, 견문, 구술 등을 채집한 결과며, 그 수집 기록 가운데 그들이 보기에 신뢰성 있는 자료를 선별, 평가한 결과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켜 주었다.

이어지는 발표는 '민간기록관 홈페이지 구축 및 관리:4·16 기억저장소 홈페이지 구축사업'이 주제였다.

4·16기억저장소 기록팀에서 새로운 홈페이지를 구축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도록,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을 목적으로 일반인, 누구나 상관없이 방문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획의도였다고 한다. 이 의도로 시작한 홈페이지 구축작업이 2018년 5월 착수하여 2019년 6월 오픈했는데, 오픈까지의 과정에 대한 내용(기획, 디자인, 개발·검수)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홈페이지 구성 중 '사료이야기'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 전시된 아이들 옷에 대한 설명을 듣는 과정에 나도 모르게 주책스럽게 눈물이 나왔다. 4·16(세월호) 사건을 가장 잊고 싶은 사람들은 4·16희생자들의 유가족이라는 신문기사를 봤는데, 이러한 사진이나 내용들을 기록하기 위해 유가족분들은 얼마만큼의 기억을 해야 했을까?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시간을 내어 4·16 기억저장소 홈페이지(http://www.416memory.org)에 방문하시는 것을 권해드린다. 이렇듯 기록인 대회는 기록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그것의 전문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기억으로 끝내지 않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기록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 4·16 기억저장소 홈페이지 첫 화면. /홈페이지 캡처
▲ 4·16 기억저장소 홈페이지 첫 화면. /홈페이지 캡처

나는 2010년, 2017년, 그리고 올해까지 3번 정도 이 대회에 발표자로 참석을 했다. 세 번의 발표 중, 올해 발표는 특히 나 스스로 감개무량한 발표였다. 이유는 2010년 발표했던 고민의 결과물을 2019년 이루었다는 내용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루다'라는 단어가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참여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에 주제넘지 않은지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주어진 기회를 빌려 담담하게 설명했다.

2010년 주제는 '경상남도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설립에 관한 고찰'이었고, 2019년은 '경남기록원 설립과 향후 발전방향'이었다. 2010년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은 그저 꿈이었던 기관이었고 발표 내용도 현황 정도로 그치는 수준으로 기관 설립의 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상상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 경상남도는 2018년 지방에서 처음으로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한 지역이 되었다. 어떠한 상황이었든, 형태였든 유일무이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고 그 타이틀이 전부가 되지 않도록 현재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 나는 이 말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 당시 나는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새내기 연구사로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상태였었다. 법을 절체절명으로 끌어안았지만, 법의 이상이 현실에 정착되지 못하는 이유를 깊이 있게 고찰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2007년 전면 개정 시행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핵심 조항인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 어린 내 마음엔 단순한 포부였을까? 지금도 기록관리의 현실에 대해 이구동성 어렵다고 하는데, 그 당시는 오죽했을까 싶지만 희망의 언어는 어느 때이고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 개인적인 사례였다.

가끔 나는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상상을 못했을 뿐, 상상을 할 수 있다면 현실은 가까워 온 것"이라고. 물론 상상의 빈약함을 탓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담금질의 성격이 강하기는 하나, 기존 행위를 답습하는 데 그치는 우리 업무처리 방식 등에 대한 의문 제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학술대회는 나의 이러한 말을 현실에서 실천하게 해준 고마운 그리고 소중한 시간이었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해 준 뜻깊은 날이기도 했다.

며칠 전, 철새들이 나는 것을 유심히 본 일이 있었는데, 무리를 지어 가는 것도 신기했지만 무리에서 떨어진 두 마리 철새가 다시 그 무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매우 신기했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두 마리가 낙오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이 다시 무리로 돌아가길 응원했는데, 무리의 날갯짓은 가벼워지고, 낙오된 두 마리의 날갯짓은 더욱 빨라지는 그들만의 균형으로 결국 그들이 다시 만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무한의 아카이브들이 철새의 본능만큼 함께하길 바란다면 따로, 또 같이 가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