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주화 운동 뛰어들었던 종교인
오늘날 천주교는 약자들의 동반자 맞나

격동의 세월 1980년대, 저는 신학대학생(84학번)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민주화는 갈 길이 먼 때였습니다. 저는 혈기 왕성한 대학생이었지만(신학생으로서) 사회의 거대한 변혁에 뛰어들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선배 신부님들의 민주화를 위한 역할을 보고 들으면서 함께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천주교 마산교구 민주화 운동의 1세대 신부님들이라고 하면, 이미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 이응석, 김용백, 김영식 신부님과 지금도 활동 중이신 임상엽, 허성학, 배진구 신부님입니다. 이분들은 '10·16 부마항쟁' 이전에 신부님이 되시고 활동하신 분들입니다. 이분들과 함께 80년대, 특히 87년 민주화 대투쟁인 6월 항쟁에서 활약을 하신 분들이 2세대 민주화 운동 신부님입니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차기병, 문영수 신부님과 아직도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시고 활동하시는 이승홍, 박창균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3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남경철, 백남해, 이상원, 하춘수, 김인식 신부님이 계십니다(이 구분은 10·16 부마항쟁과 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한 시기적 구분이며, 저의 사적 견해입니다).

제가 92년도 사제가 되면서 본받고자 한 신부님이 몇 분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제 의식을 이끄신 분은 (얼마 전 주님 품으로 떠나가신) '김영식 알로이시오' 신부님이십니다. 민주 인사들을 도피시키다가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하셨고, 당신은 청빈하게 사시면서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우셨던 분입니다. 제가 감히 따라가기에는 벅찬 분이셨습니다. 지난날 모진 세월 속에서 얻은 병고 때문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고, 이제 주님 품안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계심을 믿기에 마음은 한결 편안합니다.

그분을 떠나보내면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고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오늘의 천주교를 찬찬히 둘러봅니다. 그리고 내일의 천주교를 짐작해 봅니다. 지난 시기 천주교는 사회를 이끄는 빛이 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 어떤 단체도 선뜻 나설 수 없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앞장서서 외치며, 숨어드는 약자들을 품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천주교는 어떤 모습입니까? 약자들의 대변자, 가난한 이들의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까? 겨우 남들 눈치 보며 흉내 정도는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일 천주교 모습은…. 약한 자들이 더 이상 기대지 않는, 숨어 드는 이들이 피해 가는 종교가 될까 두렵습니다.

'김영식 알로이시오 신부님!' 한 시대의 의인이자 어른을 주님께로 떠나보내고 저를 돌아봅니다. '김영식' 신부님께서 남기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봅니다. 신부님 삶을 이어가기에 부족한 삶을 부끄러워하며, '김영식' 신부님 눈으로 오늘과 내일을 바라봅니다. 과연 천주교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주님의 기도"에 맞닿은 삶을 사는지 곱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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