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드러난 서열화
교육, 계층 세습 통로 전락
쌀쌀한 아침 수험생 뒷모습
유독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그 불편한 진실 때문이리라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경상남도교육청 88(창원)지구 제3시험장. 창원봉림고교 정문 앞 오전 7시. 수능 한파로 춥다던 날씨가 골바람 때문인지 더 쌀쌀합니다.

방금, 아들이 시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 말도 안 나오더군요. "파이팅!" 하려다가 그만뒀습니다. "시험 잘 쳐!" 이 소리도 안 나오더군요. 그냥 물끄러미 바라봤고, 아들도 '씨익'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는 뒤돌아섰습니다.

아들 등을 한참이나 응시했습니다. 저 큰 덩치를 책상 안에, 교실 안에 욱여넣어 3년을 살았습니다.

"그냥 빨리 치고 나와라!" 그 생각밖에 안 나더군요.

그사이 아들 또래가 하나씩 둘 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비장한 어깨, 처진 어깨, 아들처럼 덤덤한 어깨…. 오늘따라 아이들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돌 하나 얹어놓은 듯.

 

수험생들은 최근 몇 달 '입시 공정성'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조국 사태'는 기득권층 내에 만연한 입시특혜의 형태가 무엇인지 드러냈습니다. 이는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도입한 수시전형의 형평성 문제로 확대됐습니다.

올해 전국 54만 명의 수험생 중 72% 이상이 수시로 진학합니다. 그중 학생부종합전형은 역대 최고의 비율을 나타냈지만, 최근 교육부의 실태조사에서는 영재고·과학고-외고·국제고-자사고-일반고 순서로 서열화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일부 대학은 특정 유형의 고교를 위해 특기자 전형을 운영했고, 자기소개서·추천서·학생부의 '기재 금지' 사항 위반이나 편법 기재를 예사롭게 했습니다.

급기야 대통령의 입에서 "정시를 확대하자"는 시대 역행적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공평하기야 하겠나?"라고 막연히 추측했던 내용에 수험생들은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내 공부가, 내 실력이 공정하게 평가되는 게 아니구나. 금수저들과는 출발 자체가 다르구나.

그런데, 수험생들 어깨가 더 무거워 보이는 건, 그걸 쳐다보는 부모들이 더 안타까워지는 건, 그 '불공정'이 아이들 앞에 계속될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에서, 취업전선에서, 직장에서….

 

갑자기 옆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아이 아빠일까요? 담임 선생님일까요? "자, 파이팅" 하면서 멋있게 주먹박치기를 날리더군요. 아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주먹을 맞추었습니다.

순간 생각했습니다. "ㅋ 수험생과는 저렇게 인사하는 거구나!"

"그래, 뭐, 시험은 일단 치고 보는 거야!" 

 

▲ 14일 진주여고 수능고사장 앞에서 수험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14일 진주여고 수능고사장 앞에서 수험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창원대암고 수능고사장으로 향하는 한 수험생.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창원대암고 수능고사장으로 향하는 한 수험생.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진주여고 수능고사장 앞에서 한 학부모가 딸을 안아주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진주여고 수능고사장 앞에서 한 학부모가 딸을 안아주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창원대암고 수능고사장 앞에서 한 학부모가 수험생을 격려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대암고 수능고사장 앞에서 한 학부모가 수험생을 격려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대암고 수험장으로 들어가던 수험생이 선생님과 주먹을 맞대고 있다./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창원대암고 수험장으로 들어가던 수험생이 선생님과 주먹을 맞대고 있다./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진주여고 수능고사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진주여고 수능고사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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