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 귓가 울리는 '백조의 호수'
작곡가 차이콥스키 발레곡 우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어느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두고 우리는 타고났다는 표현을 한다. 이는 선천적인 영역으로 후천적인 노력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소위 범인이 지닌 부족한 2%인 것이다. 어찌 보면 무척이나 불공정한 신의 처사라 여겨질 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균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조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배우고 익히는 데 타고난 저마다 소질이 있기에 그렇다. 나만의 2%가 있다는 말이다. 그 남다름을 지닌 이가 자신의 자리에 있지 못함은 개인에게 비극이다. 하지만 어울릴 법하지 않은 자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사회적으로 참사다. 타고나지 않았음에 타고난 자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쭉정이가 싱그러운 떡잎을 억압하는 세상아, 꺼져라.

◇발레에 재능 있는 소년

영국의 한 가난한 탄광촌, 파업으로 시끄러운 그곳엔 엄마를 떠나 보내고 아빠와 형, 그리고 손이 가야 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소년 '빌리'가 있다. 여느 또래들과 달라 보이는 바 없는 평범한 빌리, 하지만 그에겐 숨겨진 남다른 재능이 있다. 남자들의 운동이라 할 권투보다 춤, 그것도 발레가 더 흥미로운 빌리인 것이다. 이에 빌리는 우연한 계기로 발레연습에 합류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지도자 윌킨슨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곤 계속해서 함께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빌리는 자신의 타고난 바를 조금씩 깨워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편견적 사고가 지배하던 세상과 시절에서 빌리 또한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꿈을 좇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그러나 타고난 것을 어찌하랴. 발레교사 윌킨슨은 빌리에게 날개를 달아주고자 런던에 있는 국립발레학교에 오디션 보기를 권하고 둘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준비를 계속해 나가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 펴 보지도 못한 날개가 꺾여 버릴 위기다.

▲ /유튜브 movieclips 캡처
▲ /유튜브 movieclips 캡처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빌리,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축복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가 을씨년스러울 뿐인 가운데 권투도장에서 절친에게 발레를 가르쳐주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들키고 만다. 게이적인 성적 성향을 지닌 친구였기에 더욱 오해를 살 만한 상황. 이때 빌리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보란 듯이. 나는 이렇게 춤을 멋지게 출 수 있고 그렇기에 행복하다고. 그리고 그 모습은 크리스마스에나 어울릴 법한 기적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 놓는다. 발레를 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재능과 열정이 편견을 이겨버리는 순간.

하지만 가난이라는 또 하나의 벽이 빌리의 길을 가로막으려 한다. 파업 중이라 생계마저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런던으로의 유학에 드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아버지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탄광촌 작업 차량에 오르지만 이마저도 실패, 결국 죽은 아내의 마지막 유품을 정리하고선 빌리와 함께 런던행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오디션은 치러진다. 꿈을 향한 첫 도전인 것이다.

◇안무에 따른 다양한 결말

교사 윌킨스가 빌리를 데려다 주던 차 안에서 함께 듣던 음악.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신의 고백처럼 멋지게 날아오르던 빌리의 모습과 함께 신의 악기인 하프 반주를 타고 흘러나오던 처연한 듯 아름다운 선율, 클래식에 발레 장르의 대표 히트곡이라 할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Swan Lake op.20)' 중 '정경'이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차이콥스키가 창조한 3대 발레곡 중 하나인 백조의 호수, 이 중 영화에 사용된 '정경'은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 보았을 법한 명곡이다. 우리나라의 구전동화 '선녀와 나무꾼'과 닮은 러시아의 전설을 재구성한 '백조의 호수'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이제 곧 성년식을 맞이하는 어느 작은 나라의 왕자, 그는 곧 무도회에서 자신과 함께할 반려자를 선택해야 한다. 마침 마을 축제를 즐기던 왕자는 여왕에게 선물받은 화살을 들고 사냥을 떠나는데 백조를 쫓던 그는 한 호숫가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공주 오데트를 발견하고 곧 사랑에 빠져 청혼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를 구속하는 마법을 풀 수 있는 길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받는 것. 이에 왕자는 다음날 무도회에서 결혼발표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오지 않는 오데트, 이때 악마는 자신의 딸 오딜(블랙 스완)을 오데트로 변장시켜 나타나고 왕자는 그만 속아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하고 만다.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을 알아챈 왕자는 오데트를 찾아 숲으로 향하지만 이미 그녀는 영원히 백조로 살게 된 운명에 처했다. 이때 악마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악마를 물리쳐 마침내 그들의 사랑이 완성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지닌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볼쇼이 극장에서의 초연 당시 열악한 장치와 조악한 안무로 참담한 실패를 겪는다. 이후 오랫동안 창고에서 잠자던 악보는 안무가 프티파에 의해 발견되어 새롭게 구성된다. 하여 현재의 무대에서 상연되는 버전은 초연과는 다른 것으로, 차이콥스키 사망 2년 후인 1895년, 프티파-이바노프 안무의 차이콥스키 추모공연 버전이며 이때 얻은 인기에 힘입어 조금씩 보강된 총 4막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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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발레라는 것이 같은 곡에라도 누가 어떻게 안무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는데 이에 '백조의 호수'는 그 결말마저도 다른 두 가지 버전이 유명하다. 먼저 줄거리에 소개한 행복한 결말의 볼쇼이 버전과 왕자와 공주가 함께 죽는 비극적인 결말의 로열발레단 버전이 그것이다. 이 두 버전은 안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다른 분위기도 자아내는데 볼쇼이 버전이 다소 단조롭다면 로열발레단 버전은 좀 더 화려한 색채감을 지닌다.

또 한 가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에 사용된 '매튜 본'의 재해석 현대판 버전을 빼놓을 수 없는데, 남자(발레리노) 백조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며 근래 들어 가장 사랑받고 있는 듯하다. 발레 '백조의 호수'의 감상포인트는 뮤지컬 <캣츠(Cats)>가 고양이들의 동작을 절묘하게 묘사하여 격찬을 받았듯 백조의 신비롭고도 우아한 동작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더불어 청순한 백조 오데트와 함께 관능적인 흑조 오딜 역이 펼치는 화려한 발레적 테크닉 대결 역시 매력적인 즐길 거리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선율의 마술사 '차이콥스키'가 이루어 놓은 음악이다. 전 4막 40여 곡에 달하는 방대한 곡 중 연주회용으로 발췌된 6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으로도 충분한 음악적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꿈을 좇는 행복

오디션이 끝나고 한 심사위원이 빌리에게 묻는다.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냐고. 이에 머뭇거리던 빌리는 답한다. 나 자신조차도 사라지고 불에 탄 듯,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말이다.

아마도 이러한 대답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잠재력을 알아보았을 것이고 하여 격려하고 다시금 그 열정을 마음속에 새기라 당부하기 위해 내보낸 질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재능의 번뜩이는 순간을 알아보는 그들의 심미안이 부럽다. 춤에 대한 가능성을 보는 자리이기에 다른 어떠한 것도 평가에 끼어들지 않는 그 순간이 부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은 자는 다시 타고남을 알아보는 자가 되어 진짜를 가려내는 눈을 가지고 그 자리에 앉을 것이기에 또한 그렇다. 지금의 우리가 가지지 못하여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타고난 이보다 타고난 이를 가려내는 안목과 그들을 인정하며 길을 내어 줄 용기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춤 출거야"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공표했더랬다. 머리보단 몸을 부딪힐 때 행복해하던 아이였기에 이런 순간이 올 줄 일찍이 알았지만 막상 닥치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하지만 난 이미 빌리라는 소년을 알고 있다. 하여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해준다."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해서 즐거운 걸 해."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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