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집…한글·영문번역 구성

작은 시집이다. 하긴, 시집의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니다. 시가 길거나 짧거나 한 것도 중요하지 않다. 어찌 보면 기교 역시 핵심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얼마나 시적 순간에 충실한가, 다시 말해 그 순간에 얼마나 솔직해지는가이다.

정일근(61) 시인의 시집 <저녁의 고래>(아시아, 2019년 8월)는 도서출판 아시아가 '한영대역 한국 대표 시선'으로 만드는 'K-포엣' 시리즈 중 하나다. 한쪽에 우리말 시가, 그 옆에 이를 번역한 영문 시가 담기는 방식이다.

▲ 〈저녁의 고래〉정일근 지음.
▲ 〈저녁의 고래〉정일근 지음.

같은 시리즈에서 안도현, 백석, 허수경 같은 시인의 시집은 여러 시에서 골라낸 시선집이지만 정 시인의 것은 오로지 신작만을 담았다. 때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로 쓰인 시도 있다. 영문을 번역했을 때 시의 맛이 제대로 전해질까 싶기도 하다. 시인도 "모국어가 주는 순연한 감동을 그대로 전달해줄까?" 하고 주저하기도 했던 지점이다. 하지만, 시적 순간에 대한 솔직함이야말로 시가 언어를 넘어 보편적일 수 있다.

"무당벌레 한 마리 단지, 둥근 민들레 홀씨가 궁금해 올라가 앉았다 그때, 바로 그 순간, 무심히 지나가는 바람이 홀씨를 후―하고 불어 하늘로 밀어 올렸다 무당벌레 같이 날아올랐다 어느 우주로 날아가는지 신께서 깜빡 낮잠 들어 아무것 보지 못한 하필 그 순간의 봄날에." ('순간' 전문)

번역은 대구에 사는 부부 번역가 지영실과 다니엘 토드 파커가 맡았다. K-포엣 시리즈 중 <허수경 시선>을 번역한 이들이다.

아시아. 112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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