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내부원칙 소개 '눈길'
한국 매체 무책임 행태와 대조

유럽 미디어와 저널리스트가 성취하는 저널리즘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저널리즘 위기를 인식하며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를 이야기하고 유튜브와 구글을 두려워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 사명감과 현실 사이 괴리감을 토로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첫 일정은 BBC입니다.

수많은 인원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각자 업무를 유기적으로 진행하는 거대한 뉴스룸은 규모부터 압도적이었습니다. SF영화에서나 보던 거대한 함정 속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압도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거나 허세일 것입니다. 다행히 BBC 저널리스트인 칼(Carl Joseph) 씨가 무거운 현실 영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민을 던졌습니다.

"요즘은 BBC에 들어와도 현장에 나가는 특별한 경험이 잘 제공되지 않는다. 젊은 구성원은 취재를 전화로만 한다. 정보는 인터넷에 깔렸고 저널리즘은 없으며 인터뷰만 넘친다. 이들이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잦다. 신세대가 컴퓨터 편집도 잘하고 인터넷 설문지도 뛰어나게 만들지만 저널리즘 정신과 스킬은 박탈된 듯하다."

꼰대 같습니까? 이런 문제의식은 어떻습니까? 칼 씨는 현재 3만 5000여 명이 일하는 BBC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고, BBC가 저널리즘을 성취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비즈니스가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성찰이 60대 저널리스트가 현장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힘 아닐까 싶습니다.

▲ 영국 런던에 있는 BBC 본사.  /이승환 기자
▲ 영국 런던에 있는 BBC 본사. /이승환 기자

◇Two source rule = 최근 한국에서 검찰발 뉴스를 향한 비판은 검증과 추가 취재가 없으며 오보에도 책임지지 않는 태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과 동떨어진 보도 태도를 막는 장치가 BBC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칼 씨는 '투 소스 룰(Two source rule)'을 소개했습니다.

"출처가 다른 정보가 교차로 확인돼야 보도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원 소스(One source)로 보도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때는 취재원과 기자에 대한 신뢰성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하지만, 대부분 투 소스 룰을 지킨다. 저널리스트는 누구나 최초이고 싶으면서 정확하고 싶다. 딜레마다."

여기서 '투 소스'는 '크로스 체킹(cross checking)'과 약간 다른 개념으로 해석합니다. 크로스 체킹은 어떤 의혹이 나왔을 때 당사자에게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투 소스'는 이해관계가 없는 출처에서 나온 겹치는 정보로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황수민 BBC 코리아 편집장이 투 소스 룰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예전에 평양발 중국행 열차에 김정은 탑승 여부를 놓고 보도가 쏟아졌던 적이 있다. 우리는 다른 매체가 보도하기 전에 김정은이 탑승했다는 정보를 접했으나 확실한 소스 두 개를 갖추지 못해 보도하지 않았다."

단순하고 명료한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는 한국 매체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소비자는 이 원칙을 지키는 더딘 과정과 결과물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나쁜 질문, 좋은 답변 = BBC에서 영국언론인노조(NUJ)로 이동하면서 우리를 안내한 짐(Jim Boumelha) 전 국제기자연맹(IFJ) 총장과 대화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BBC에서 일하는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먼저 사안이나 현장에서 가치 판단을 놓고 기자와 뉴스룸(편집국)이 달라서 갈등을 빚을 때 BBC는 어떻게 답을 찾는지 궁금했습니다.

"흔한 일이다. 우리는 그 갈등이 '더 나은 저널리즘을 성취한다'는 같은 목표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그 신뢰가 없으면 각자 고집이고 갈등이다. 그 신뢰는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난다. 자기를 내세울 것인가, 더 나은 저널리즘을 앞세울 것인가 문제다."

이런 가정도 했습니다. 내가 만약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인데 리포팅할 때마다 이겨도 맨유, 져도 맨유만 이야기한다면? 저널리즘보다 자기 가치관이나 취향이 앞서는 일도 허다하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 지점을 스스로 성찰하는 게 저널리스트이고 밖에서 그 선을 제어하는 게 뉴스룸 역할이다. 투 소스 룰 원칙을 이야기했지만 세상 일은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거기에서 답을 하나씩 찾아가는 게 우리 일이다. 물론 아주 힘들고 어려우며 고약한 일이다. 그 어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저널리스트 아닌가?"

대화 내내 통역에 의지했지만 순간 진심을 담아 아주 짧은 영어로 마음을 전했습니다.

"Bad question, good answer.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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