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론 편향성 차단 집중
미디어 독점에 법적 규제 적용

가이드는 베를린이 독일과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독일 내 다른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엿보이는 보편적 특성을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젊고 활기찬 곳이라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개념을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을 빌리면 힙(hip)한 곳입니다. 물론 하루도 채 머무르지 못한 처지에서 느낄 영역은 아니겠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신문, 특히 지역신문은 같은 매체 사이에서 모범 사례로 종종 언급됩니다. 카페에 앉아 신문을 읽는 유럽인을 상상하면서 이들 일상에서 신문은 뭘까,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신문을 읽는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머물렀던 호텔 로비나 편의점에 있는 신문은 처음 놓인 그 자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일상에서 신문은 프랑스 파리 한 골목에 주차한 택시 운전석 앞에 놓인 <르 몽드> 한 부였습니다. 유럽 무선 인터넷 환경이 우리보다 열악한 것은 사실이나 스마트폰 보급과 소비에 차이는 없습니다.

▲ 독일 베를린 호텔 로비에 놓인 신문.  /이승환 기자
▲ 독일 베를린 호텔 로비에 놓인 신문. /이승환 기자

◇프랑스와 독일 미디어 정책 차이 = 프랑스·독일에서는 국가 단위 미디어 정책을 소개받았습니다. 프랑스 문화부 미디어문화산업정책총국과 독일 연방미디어청 면담 일정입니다. 지역신문, 전국신문, 공영방송, 민영방송 소속 조합원으로 조사단을 꾸린 만큼 각자 소속 매체 관련 정책에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랑스와 독일 미디어 정책에 깔린 철학에서 나타나는 차이입니다.

프랑스 미디어 정책 초점은 '다양성 보장'입니다. 공을 들이는 정책인 신문 배달 지원은 그 시작이 프랑스혁명 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매체 성향·진영·규모를 가리지 않습니다. 일간지에 그치던 지원을 2015년부터는 주간·월간·계간지에도 확대하는 흐름입니다. 정책 전환점은 역시 샤를리 에브도 테러입니다. 파브리스(Fabrice Casadebaig) 신문·뉴스 직종 담당 부국장은 정책 개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프랑스 시민이라면 어디에서든 원하는 활자 매체를 아침 식사 전에 식탁에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독일 미디어 정책은 '획일성 차단'을 앞세웁니다. 이를테면 한 미디어 그룹이 소유한 채널을 모두 합산해 시청률이 30%를 넘으면 법적 규제가 들어갑니다. 일정 시간 편성권을 제한하거나 다른 매체 소유를 막는 방식입니다. 공영방송을 제외한 모든 매체에 이 규제를 적용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 익숙하다면 당연히 의문이 생깁니다. 매체 스스로 잘해서 시장을 지배하는 것까지 막을 명분이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베른트(Bernd Malzanini) 독점미디어 부서장 대답은 이렇습니다.

"여론이 편향될 때 '나치'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겪은 불행한 역사를 목격한 국가로서 특수성이 있다."

여론 편향을 막는다는 면에서 다양성 보장(프랑스)과 획일성 차단(독일)은 고민 출발점이 비슷한 듯합니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에서 비롯한 구체적인 정책 구상과 실현은 상당히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그나저나 한국 정부가 내놓는 미디어 정책 바탕에는 어떤 철학이 깔려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다른 신문, 같은 1면 = 베를린에서 이동 중에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가 화제로 올랐습니다. 후보 검증 청문회 중 아내가 기소되고 나서 바로 나온 신문들입니다. 매체를 막론하고 1면 제목과 구성이 차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SNS에서도 각 매체 1면 사진을 묶어 올려 비난하던 글이 많았습니다. 독일 신문에서는 이런 편집을 거의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신문 1면에 같은 뉴스를 다루는 일도 흔하지 않지만 같은 제목이 나가는 것을 상당히 낯설어했습니다.

매체 집중도가 높은 사안이고 사실관계 문제도 없다면 비슷한 편집이 나올 수도 있다는 소극적인 반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관 후보 아내를 기소했다는 사실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을 배제했다는 지적까지 피하기는 어려울 듯했습니다. 시점, 방식, 타당성, 영향 등을 따지면 얼마든지 다른 편집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매체 스스로 배제했을 때 이룰 수 있는 저널리즘은 무엇일까, 그런 자문입니다. 강제한 주체도 없는데 결과적으로 다양성을 피하고 획일성을 지향한 셈입니다. 이제 영국으로 가보겠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