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고하 막론 친구되는 수단 경기 전후 가벼운 목례 기본
상대 실수 바라는 '꼼수'안 돼 삶 그렇듯 멋있게 지며 배운다

뚝 떨어진 기온에, 미세먼지에 실외 운동이 제한되는 계절이 왔다. 그렇다고 활동을 멈출 수는 없는 법. 그럴 때 바둑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때마침(?) 매년 봄에 시작해 겨울에 포스트시즌을 끝냈었던 국내 바둑리그가 올해는 가을에 시작해서 내년 봄에 끝나는 걸로 일정이 바뀌었다. 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바둑을 겨울 스포츠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조용성 경남바둑협회 전무가 연재하는 다음 글이 새로운 겨울 스포츠 '바둑'과 독자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기를 바라본다.

바둑을 배우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목적이 불분명하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자칫 삿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설사 바둑의 고수(高手)가 된다하더라도 오만하고 방자해져 아집과 독선의 고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바둑을 배우는 목적이 명징해야 한다. 바둑을 배우는 목적, 필자는 친구를 사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바둑판 앞에서는 평등하다. 평평한 바둑판에서 모두가 평등해지는 것이다. 그 평등을 전제로, 마주 앉아 뚝딱뚝딱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바둑이다. 그런데 바둑을 통해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절친했던 친구를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둑예절을 모르거나 지키지 않아서다.

바둑의 별칭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담(手談)이다. 직역하면 손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의미이고 의역하면 대화를 하지 않고도 대화를 한다는 의미이다. 바둑은 부처가 가섭에게 전했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두뇌스포츠인 것이다. 필자가 바둑을 처음 배울 때는 시작과 끝에 가벼운 목례만 한다고 배웠다. 바둑TV 등 방송에서 나오는 전 세계의 프로기사들도 역시 가볍게 목례만 한다. 프로기사는 필자와 같은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보면 태산과 같은 존재이고 이제 막 바둑을 배우려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외계생명체와 같은 존재이다. 마치 고도의 문명이 발달한 행성에서 이 지구에 불시착해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존재랄까. 그 외계생명체를 알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하는 대로 해봐야 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고 고양이를 잡으려면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야 한다. 그러므로 바둑을 두기 전과 후에는 필히 목례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둑의 기본예절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잘 배우겠습니다" "잘 배웠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권장한다.

바둑은 많이 져야 실력이 는다. 패배를 통해 승리의 방법을 터득해 가는 것이다. 아이들이 시험을 본 후 틀린 문제를 통해 배워나가듯 바둑도 잘못 두는 수를 통해 올바른 수를 배울 수 있다. 이기면 당장의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조금밖에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러나 지는 법을 적확히 알아야 한다.

예전에 어떤 프로기사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일본 프로기사의 이야기인데, 바둑을 두다가 상대가 엉뚱한 곳에 잘못 두었다. 그러자 그 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프로기사는 되레 기권을 했다. 승패에 따라 대국료가 지급되는 프로기사이지만 상대의 실수로 인해 승리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멋있게 졌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의 실수를 바라고 온갖 함정수와 꼼수를 동원해 이기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멋진가. 함정수와 꼼수로 이기게 되면 절친한 친구사이라도 금이 가게 된다. 진 쪽에서는 자괴감과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소리소문 없이 틈이 벌어져 관계까지 무너질 뿐이다. 그러니 많이 지되 멋있게 지자.

이제 독자들이 바둑을 배울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 생각한다. 마른 수건으로 바둑판을 정성스럽게 닦고 시작하는 기분이다. '제3강 활로와 단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바둑을 알려주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