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끄는 연탄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자립심을 배웠다."

"가난 속에서도 돈을 최고로 여기지 않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됐다."

29일 별세한 강한옥(92) 여사는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이기 전에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우리 시대 평범한 어머니였다. 돈보다 소중한 삶의 가치를 지키며 살길 바랐던 마음은 고스란히 문재인 대통령 삶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강 여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 당시 남편 고 문용현 씨와 함께 젖먹이였던 딸을 데리고 거제로 피란을 와 1953년 문 대통령을 낳았다.

2남 3녀 가운데 둘째이자 장남인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을 통해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지며 궂은 일을 마다치 않고 살아온 어머니에게 각별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냈다.

거제로 피란을 온 후 어머니는 계란을 싸게 사다 문 대통령을 업은 채 부산으로 행상을 떠나는 등 힘든 실향민 생활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옮겼지만 양말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구호물자 옷가지를 시장 좌판에 놓고 팔거나 연탄을 배달하는 등 낯선 땅에서 가족을 지키는 가장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가 부산 영도구 남항동 남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투표를 한 뒤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29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가 부산 영도구 남항동 남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투표를 한 뒤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태풍에 집 지붕이 날아가고, 월사금을 내지 못하거나 명절에나 목욕탕을 갈 수 있는 가난한 삶이 계속됐지만 "돈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는 가치관을 문 대통령에게 심어준 것 역시 어머니가 보여준 헌신적인 삶에서 비롯했다.

문 대통령에게 어머니가 끼친 영향은 종교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된 어머니를 따라 문 대통령 역시 초등학교 3년 때 영세를 받고 어머니가 직접 '티모테오'라는 세례명을 지어줬다.

어려운 형편에도 문 대통령은 지역 명문인 경남중과 경남고에 입학하고 경희대 법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1975년 4월 유신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구속돼 검찰로 이송되는 날 행여 면회라도 할 수 있을까 부산에서 온 어머니가 "재인아! 재인아!" 이름을 부르며 호송차를 뒤따라 달렸던 모습은 문 대통령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순간이다.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온 어머니 기대를 저버렸다는 괴로움에도 문 대통령이 학생운동과 인권변호사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것은 기차표 암표 장사에 나섰다 어린 아들과 함께하기에 내키지 않아 발길을 돌린 어머니와의 기억 때문이었다.

<운명>에서 문 대통령은 "어릴 적 가난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됐다"며 "더 이상 가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잘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던 강 여사 역시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 기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당시 후보였던 '문 대통령이 변하면 그땐 어떻게 조언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며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다 캐도(해도) 마음 변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아들은 지갑이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사는 사람"이라며 아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줬다.

평온하지 않은 정치 한복판에 '운명'처럼 서 있는 아들을 보며 마지막까지 마음 졸이면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는 "그래도 행복했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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