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라 도망가는 산왕거미.
▲ 놀라 도망가는 산왕거미.

간혹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쁜 존재로 오해받는 동물들이 있다. 이런 동물들이 보이는 공통점은 대체로 밤에 나타나거나 검다는 것이다. 사람들 기분에 따라 혹은 단지 검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 머릿속에 맘대로 각인되는 동물들에는 뱀, 까마귀도 있고 거미도 있다. 말 못하는 동물들 입장에선 그저 억울할 따름이다. 하지만 관심 가지고 자세히 관찰하며 살펴보면 대부분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인식인 경우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거미라는 이름은 '검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검다'라는 형용사 어근 '검'에 명사형 접미사 '-의'를 붙여 '거믜'라고 부르다가 거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거미가 다 검은색을 띄진 않는다. 울긋불긋 붉은색을 띈 거미도 있고, 호랑이 무늬를 닮은 거미도 있다. 예쁜 연두색으로 치장한 거미도 보인다.

거미는 약 4억 년 전부터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가 부드러워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매우 적다. 정확한 연대를 알기 어려우나 대체로 5억 년에서 6억 년 전쯤부터 지구상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의 경우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에 있는 진주층에서 발견된 약 1억 년 전 거미 화석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생각보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동물이다. 전 세계 거미목록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견된 거미는 45,313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사는 거미 종류는 대략 726종에 이른다. 대표 선수로는 왕거미, 산왕거미, 호랑거미, 무당거미, 깡총거미 등이 있다. 거미는 대체로 짧게는 1년 미만에서 길게는 3년 이상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애완용으로 기르기도 하는 타란툴라 중에는 25년을 산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배운 내용 중에 거미가 곤충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곤충과 거미는 모두 절지동물이다. 마디 절, 다리 지. 마디가 많은 다리를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절지동물 중에 곤충은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뉘고 거미는 머리가슴, 배 두 부분으로 나뉜다. 곤충과 거미는 조상은 같지만 생물학적 분류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곤충은 대부분 날개가 있는 반면에 거미는 날개가 없다. 거미는 탈바꿈을 하지 않고 허물 벗기만 한다. 다리는 4쌍이다. 이 정도만 알았어도 과학 시험에 나온 문제의 답은 맞출 수 있었을 텐데….

▲ 나무에 오르는 통거미.
▲ 나무에 오르는 통거미.

거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줄을 치는 일이다. 거미 종류에 따라 줄 치는 방법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거미줄 치는 과정을 눈여겨 살펴보면 꽤나 재미있다. 물론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천천히 관찰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우리 눈에 자주 띄는 거미들 중에 산왕거미는 선들선들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거미그물 작업을 시작한다. 첫 번째 하는 일은 거미줄 칠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고르는 일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또는 풀과 나무, 풀과 풀 사이가 가장 적당하다. 거미의 크기에 따라 거미줄 규모는 다르게 쳐진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거미 중 제일 큰 거미그물을 치는 종은 산왕거미다. 사람으로 치면 대궐 같은 집인데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라 깜짝 놀랄 정도다. 산왕거미는 작정하고 찾으면 제법 많은 수를 볼 수 있다. 벌레가 많이 사는 연못이나 습지 주변에는 어김없이 산왕거미가 살고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찾아오면 정자 모서리나 구멍, 나무 잎사귀 사이에 숨어있던 산왕거미가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우선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해 거미줄을 날린다. 애써 바람에 날린 거미줄이 반대편 물체에 걸리면 얼개 줄을 완성한다. 이때 자칫 잘못 날아간 거미줄은 바람에 날려 다른 곳에 걸리기도 하는데 밤 시간에 운동하는 사람들 얼굴에 닿는 경우도 있다. 거미는 보이지도 않는데 왜 거미줄이 얼굴이나 몸에 걸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런 거미줄일 가능성이 크다.

거미줄은 크게 세로줄과 가로줄로 나눌 수 있다. 세로줄은 끈끈이가 거의 없는 줄로 거미그물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세로줄이 완성되고 나면 곧바로 가로줄을 치기 시작한다. 가로줄은 끈끈이가 많아 먹이가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친다. 가로줄은 가운데 중심점을 기준으로 다리를 이용해 약 30분 정도 치면 완성된다. 거미그물이 완성되고 나면 거미는 원형 거미그물의 중앙으로 이동해 몸통을 아래로 향한다. 지금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먹이가 걸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거미그물에서 기다리는 산왕거미를 나무 막대기로 툭툭 건드려보면 세로줄을 따라 빠른 속도로 피신하기도 하고 급할 경우엔 땅이 있는 쪽으로 수직 하강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산왕거미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주변의 거미줄을 관찰해봤는데 거미줄만 보이고 거미는 어디론가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참을 관찰해보니 직박구리가 산왕거미를 잡아먹는 모습이 보인다. 대단한 직박구리다. 반면에 참새나 박새처럼 작은 새는 산왕거미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 치기도 한다. 말벌이 걸려있는 모습도 보였는데 거미가 없는 틈을 타 강력한 턱힘으로 거미줄을 끊고 달아나는 장면도 목격됐다. 거미 자신 몸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먹이가 걸리면 거미줄을 끊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모습이다.

▲ 복잡하게 얽혀있는 무당거미 거미그물.
▲ 복잡하게 얽혀있는 무당거미 거미그물.

호랑거미나 무당거미도 아주 흔하게 보인다. 호랑거미는 배 부분에 호랑이 무늬 같은 진한 갈색과 노란색 띠가 교차로 늘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호랑거미는 연못 주변이나 논두렁 주변, 저수지, 하천변 둑 근처에 주로 거미그물을 만든다. 거미그물은 세로로 원형 그물을 짓는다. 특이한 것은 거미그물 가운데 보이는 흰 띠인데 용도에 대해서는 학자들 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인다. 거미그물을 보강해 거미 무게를 지탱하는 역할, 천적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장치 또는 주거의 흔적이라고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꽃인 줄 알고 찾아오는 곤충을 잡아먹으려고 만든 가짜 꽃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형 거미그물 중앙에 아래를 향해 앉아 있는 호랑거미 거미그물에 도구를 이용해 흔들면서 가까이 접근하면 호랑거미는 다리로 거미그물을 잡고 앞뒤로 힘차게 흔들어댄다. 이런 행동은 거미줄에 진동을 주어 자기보다 큰 곤충이나 새의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동을 이용해 거미줄을 흔들어 천적의 공격을 피하는 행동을 하는 것인데 막대기로 거미줄을 세게 흔들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호랑거미는 안전실 한 가닥을 중앙에 매단 채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줄행랑을 친다.

호랑거미와 비슷하게 생긴 거미로 무당거미가 있다. 얼핏 봐선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닮아있다. 무당거미는 호랑거미와 달리 홀쭉한 편이고 다리는 더 길쭉하다. 몸 무늬에 붉은색이 섞여 있어 무당거미로 불린다. 무당거미는 가을을 대표하는 거미 중 하나다. 개체수가 많고 서식지도 광범위하다. 무당거미는 겉으로 보기에 지저분할 정도로 거미줄을 복잡하게 치는 거미다. 삼중망 거미그물을 쳐놓고 날아오는 곤충을 기다린다. 거미줄이 지저분한 이유는 거미줄로 칭칭 감아 놓은 먹이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낙엽도 거미줄에 걸려 흔들리기 때문인데 거미줄이 있는 줄 모르고 급하게 뛰어가다 무당거미 집이 얼굴에 닿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무당거미는 황금색 거미줄을 치기도 한다. 호랑거미와 겉모습은 닮았지만 거미그물 형태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천적이 다가오면 그물을 심하게 흔들어대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호랑거미와 비슷하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산왕거미, 호랑거미, 무당거미는 암컷과 수컷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크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인데 암컷에 비해 수컷이 훨씬 작다. 무당거미의 경우는 암컷 몸길이가 25mm에서 30mm에 달하는데 비해 수컷은 암컷의 1/3정도 크기다. 약 6m에서 10m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거미그물을 눈여겨 관찰해보면 암컷이 쳐놓은 거미그물 가장자리에 서성거리는 작은 크기의 수컷을 볼 수 있다. 암컷이 사냥해 놓은 먹이 찌꺼기를 눈치껏 훔쳐 먹으면서 호시탐탐(?) 짝짓기 기회만 노리고 있다. 눈이 퇴화되어서 그런지 더부살이 하는 수컷 거미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은 암컷에겐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자칫 발각되기라도 하면 수컷은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 산왕거미 거미그물에 걸린 말벌.
▲ 산왕거미 거미그물에 걸린 말벌.

요즘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거미보다 거미줄을 이용해 하늘을 날거나 악당을 공격하는 스파이더맨이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스파이더맨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거미줄을 쏘아 대지만 실제로 거미 한 마리가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는 거미줄 길이는 보통 200m에서 300m에 이른다고 한다.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서 측정한 거미줄 강도는 굵기가 같은 섬유일 때 인장 강도가 알루미늄은 4kg/㎟, 티타늄은 90kg/㎟, 신소재 유리섬유는 100kg/㎟, 강철은 40kg/㎟이고 거미줄은 170kg/㎟였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지금보다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스파이더맨의 초능력이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치다.

스파이더맨을 핑계 삼아 아이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있는 거미와 거미그물 관찰해보면 여러 가지 재밌는 장면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식지에 따라 다른 여러 종류의 거미들을 만날 수도 있고, 다양한 형태의 거미그물도 관찰할 수 있다. 집 안이나 집 주위뿐만 아니라 정원, 학교 화단, 길거리 어디에도 거미는 살고 있다. 몸집이 가장 크거나 비교적 큰 편에 속하는 왕거미과, 거미그물을 쳐서 먹이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떠돌아다니며 깡총 깡총 뛰어서 먹이를 잡아먹는 깡총거미과, 작은 접시 모양이나 천막 모양으로 거미그물을 치는 접시거미과, 다른 거미들에 비해 다리가 유난히 긴 유령거미과, 너구리처럼 밤에 활동하면서 먹이 사냥을 하는 너구리거미과 거미들도 찾아본다면 거미 관찰 재미는 배로 늘어날 수 있다.

▲ 풀 속에 집을 지은 거미.
▲ 풀 속에 집을 지은 거미.

갑자기 거미가 궁금해진다면 지금 당장 내가 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관찰해보자. 안 보이던 거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풀꽃도, 나무도, 거미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서부터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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