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또 가을이다. 이 계절은 절기(節氣)상으로도 그러하거니와 기운이 차고 쓸쓸하여 심적으로 그저 처연(凄然)함을 안겨준다. 더구나 이번 가을을 앞둔 막바지에 온 나라가 뒤얽혀 누군들 심경이 편할 수가 있었을까. '진보'에 실린 글을 음미하며 마음을 씻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보의 '유용문봉선사(遊龍門奉先寺)'는 시상이 맑은데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느끼게 하여 마음을 다독여 주는 듯하다. 

"이미 초제를 따라 놀다가/ 다시 초제의 경내에 유숙하구나./ 어두운 골에선 신령한 울림이 나오고/ 달빛 숲엔 맑은 그림자 흩어지네./ 산봉우리는 별 드리운 하늘에 가깝고/ 구름 속에 누웠자니 차가운 옷가지/ 새벽잠에서 깨어나 듣는  쇠북소리/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반성을 발하게 하누나.(已從招提遊 이종초제유 更宿招提境 갱숙초제경 陰壑生靈籟 음학생령뢰 月林散淸影 월림산청영 天闕象緯逼 천궐상위핍 雲臥衣裳冷 운와의상랭 欲覺聞晨鐘 욕교문신종 令人發深省 영인발심성)."

초제는 범어로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보가 용문산 봉선사에서 노닐었던 일을 읊은 것이라 한다. 

깊은 골짜기 어둑한 데서 신령한 피리소리 들리는 듯 하고 숲 사이에 흐르는 달빛이 바람에 흩어진다. 천궐(天闕)은 몇 가지 의미가 있으나 높은 산봉우리로 해석하기도 한다. 상위(象緯)는 별이 하늘에 상을 드리운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해발 고도가 높은 산사의 찬 구름은 유숙한 객의 겉옷을 적실뿐만 아니라 객의 새벽잠을 설치게 하였고, 범종소리 또한 속세의 때 묻은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장면이다.

두보의 시는 모두가 그러하듯 말이 진실하고 뜻이 엄숙하다. 사람들을 속여 남을 이기려하고, 양심과 질서가 짓밟힌 무엄(無嚴)한 이 시절에 한 소절을 청량제로 읽어봄직 하다.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다음 시도 그 느낌은 앞의 두보 시와 비슷하다.

"오늘 아침 군청이 차갑다/ 갑자기 산속의 손님이 생각난다./ 시내 밑에서 땔나무 섶 묶어/ 돌아와 백석을 삶으리라/ 멀리 한 잔 술 가져다가/ 아득히 비바람 부는 저녁을 위로하려는데/ 낙엽이 빈산에 가득하니/ 어느 곳에서 행적을 찾을 것인가(今朝郡齋冷 금조군재랭 忽念山中客 홀염산중객 澗底束荊薪 간저속형신 歸來煮白石 귀래자백석 遙持一盃酒 요지일배주 遠慰風雨夕 원위풍우석 落葉滿空山 낙엽만공산 何處尋行迹 하처심행적)."

작자가 제주현 자사(刺史)로 있던 어느 가을 날, 날씨가 쌀쌀해지자 전숙의 산중에서 수도하던 벗이 생각나 그를 걱정하며 지은 '寄全琡山中道士(기전숙산중도사)의 전문이다.

우정은 이 시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특히 벼슬길에 올라 관작(官爵)을 얻게 된 사람은 벗과의 지난 우정을 현실의 이해타산으로 밀어내버리기 일쑤다. 시인이 친구를 도사(道士)라고 일컬었고 시대적으로 도교, 불교가 함께 성행하던 때였음을 미루어 볼 때 그 친구는 과거 공부로 입신양명을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백석은 삶으면 토란과 같아져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시인은 아마 지난 날 친구가 백석을 삶던 일을 회상하고는 관청마저 추운 날에 산중에 있는 친구에게 한 잔 술을 대접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전원의 풍물을 주로 읊은 도연명의 시풍은 왕유, 유종원, 위응물, 맹호연으로 계승돼 당시(唐詩)에서 이백·두보의 양대 산맥과는 별도로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위응물의 이 시도 도연명류의 전원시이다. 후대의 소동파가 이 시를 몹시 애송하여 작심하고 배우려하였으나 끝내 흡사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도 이 시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다. 

섭이중(聶夷中)의 '농가를 슬퍼함(傷田家)'이란 시는 '이 한편에 시경 3백편의 뜻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월에 새 고치실 팔고/ 오월에 새 곡식 판다..... 나의 소원은 임금의 마음이 변하여 밝은 촛불 되어 비단자리 비추지 말고 유랑하는 백성들 집에 비췄으면 하네(이월매신사 二月賣新絲 오월조신곡 五月糶新穀....아원군왕심 我願君王心 화작광명촉 化作光明燭 부조기라연 不照綺羅筵 편조도망옥 遍照逃亡屋)."

이 시의 해제를 보면 "2월에 돈을 꾸어 관청에 바치고 여름에 누에를 쳐서 생사를 갚을 것을 약속하니, 이는 2월에 이미 새로 나올 생사를 팔아먹은 것이다. 5월의 새 곡식도 마찬가지로 가을 햅쌀을 이미 5월에 팔아먹은 것이다."고 했다.

'전당시화(全唐詩話)'에는 섭이중의 시를 평하여 "시어는 흔하여 알기 쉽지만 그 뜻은 심원하여 '시경'의 뜻과 합한다.(語近意遠 合三百篇之旨)"하여, 그가 농민의 실상을 체득하였기 때문에 이런 시가 가능했다고 옛사람은 평가했다.

위 세편의 시는 다 다르지만 독자로 하여금 이 처연한 가을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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