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절 끝 테러 막아낸 이후 민간 항공기 착륙할 때에 흐르는 장엄한 찬가 선율
애국적 교향시 '핀란디아' 핀란드 '시벨리우스'작곡 러시아 압제에 저항 의미

가끔은 영웅이 필요하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영웅이 필요치 않은 세상이어야 한다. 난세에 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필요로 한다니 그렇다. 위태롭지 않고 위협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 그러한 시절이 있었던가? 풍요의 그늘에 가리어졌을 뿐 여전히 지구의 한편에선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며 세계경제는 늘 불안했고 전쟁의 총성은 국지적일지라도 끊이지 않았다. 지구가 아파 치료가 필요하다는, 어쩌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또한 이제는 누구나 절감하는 바이다. 빌딩이나 공항 등 제한된 공간에서의 위기는 정의감으로 무장한 어느 작은 영웅에 의해 지워질 수 있다지만 과연 이러한 인류적 위기에는 어떨까. 하니 이제 범지구적 영웅을 기다려 본다. '구해줘 제발'.

◇크리스마스를 덮친 테러

은총만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 맥클레인 형사(브루스 윌리스)는 아내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와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거금을 취할 목적으로 빌딩에 잠입한 테러 일당을 만나 한바탕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그들을 제압한 그는 이제 유명인사다. 하지만 올해도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맞기는 틀렸나 보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공항이지만 이미 테러범들의 검은 계획이 은밀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뭔가 수상쩍은 낌새를 느낀 맥클레인, 의도치 않은 총격전이 발생하고 이에 경찰 관계자는 영웅놀이를 하는 듯한 그의 행동을 거슬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하지만 상황은 맥클레인이 우려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공항은 테러범들에 의해 순식간에 장악되고 얼마 남지 않은 연료로 공항 주변을 선회하는 항공기들은 험악한 기상조건임에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테러범들의 요구는 이제 곧 이곳에 도착할 사상 최악의 마약 대통령 에스페란자를 인도받는 것. 무고한 사람들이 타고 있는 항공기를 오인 유도, 땅으로 곤두박질치도록 만드는 그들의 잔인함에도 공항 관계자들은 속수무책인 가운데 맥클레인은 우연히 만난 공항 청소부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행동에 나선다.

▲ 맥클레인(맨 위 사진) 형사가 유출된 항공유에 불을 붙여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를 박살내는 장면. /유튜브 'Movieclips' 캡처
▲ 맥클레인(맨 위 사진) 형사가 유출된 항공유에 불을 붙여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를 박살내는 장면. /유튜브 'Movieclips' 캡처

한편,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관계자들은 특수부대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그들은 맥클레인에게 한 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돈키호테 같은 그는 여전히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테러범들을 압박하고 그들의 구출대상인 에스페란자에게마저 총상을 입힌다. 하니 테러범들에게나 특수부대에게나 그는 엄청나게 성가신 존재다.

이렇게 죽음의 고비가 끊임없이 이어지다 마침내 찾아낸 테러범들의 작전소굴. 이곳을 홀로 잠입하던 맥클레인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목적을 달성한 테러범들이 도주하는 가운데 그들을 제압해야 할 특수부대와의 총격전은 어쩐지 허무하다. 상대를 위협해야 할 탄환이 모두 공포탄이었으며 테러범과 특수부대가 한패인 상황인 것이다. 그들은 이제 사이 좋게 한 비행기에 올라 공항을 벗어나려 한다. 이를 알아챈 주인공 맥클레인은 공항경비대로 달려가 이러한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한심하도록 관료적인 책임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 이제 곧 잔인한 테러범들과 그들의 마약보스를 태운 비행기가 이륙할 것이며 테러범들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곳엔 그들을 막아 설 '웬만해선 죽지 않는(Die Hard)' 맥클레인이 있다. 그는 또 한번 테러리스트들을 응징할 것이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테러리스트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미 활주로에 들어선 것이다.

▲ 맥클레인(맨 위 사진) 형사가 유출된 항공유에 불을 붙여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를 박살내는 장면. /유튜브 'Movieclips' 캡처
▲ 맥클레인(맨 위 사진) 형사가 유출된 항공유에 불을 붙여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를 박살내는 장면. /유튜브 'Movieclips' 캡처

◇핀란드인의 항거

테러리스트들이 탄 비행기의 날개 위, 맥클레인은 이곳에서 격투를 벌이다 굴러 떨어져 버리고 이렇게 활주로에 버려진 그를 비웃듯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내달린다. 이대로 끝인가? 하지만 맥클레인을 만만히 봐선 안될 것이다. 날개로부터 흩어져 내리는 기름, 그리고 우리의 영웅은 '잘 가라'며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이 불은 쏟아진 기름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내달려 마침내 테러리스트들의 방주를 덮쳐 소멸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제 이 불의 길은 랜딩가이드가 되어 공항 상공을 위태롭게 배회하던 비행기들의 착륙을 돕는데 실로 통쾌한 순간이며 이러한 장면과 어울려 퍼지는 멋진 선율이 있으니 바로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의 명곡 '핀란디아(Finlandia op.26)'다.

바이올린협주곡, 교향곡 2번과 5번, 그리고 슬픈 왈츠 등과 함께 시벨리우스의 대표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교향시 '핀란디아', 이 곡은 압제에 시달리던 핀란드 국민들에게 항거의 음악이며 민족의식을 고양시킨 조국에 대한 찬가다. 시벨리우스가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1899년 2월, 당시 핀란드를 지배하던 러시아는 '2월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핀란드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조치로 자연히 국민들과 예술가들의 반발을 불러 오고 곧 이에 저항하기 위한 자유언론을 지원코자 기금마련 행사가 마련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핀란드의 역사를 다룬 <역사적 정경>이라는 극이었다. 이에 시벨리우스가 적극적인 항의를 표하기 위하여 총 7곡으로 구성된 이 역사극에 참여하게 되고 그 마지막 곡이 바로 그의 작품 '핀란드여 일어나라(Suomi heraa)'이며 '핀란디아'의 초기 버전인 것이다. (Suomi는 호수와 늪의 나라라는 뜻으로 핀란드의 별칭이다)

이 곡은 독립에 목마른 핀란드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유럽 각지에서 연주되며 유명해져 갔으며 이듬해인 1900년, '핀란디아'라는 곡명으로 정식 개정, 당해 파리 대박람회에서 작곡가의 지휘봉 아래 초연되어 높은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이후 '핀란디아'는 합창곡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불리게 되는데 핀란드의 제2의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곡은 휘몰아치는 듯 통렬한 1부를 지나 장엄한 찬가풍을 맞이하며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 선율은 너무도 유명하여 한번쯤 들어봤을 명곡이다. 또한 교향시 '핀란디아'는 원래 관현악으로 편성된 곡이긴 하나 찬가풍이다 보니 사람의 목소리, 특히 합창단과 함께한 연주를 접하였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에 헝가리가 낳은 위대한 지휘자 유진 오르먼디(Eugene Ormandy)가 그의 수족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The Philadelphia Orchestra)와 모르몬 합창단(Mormon Choir)을 대동하여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시라 권하는 바다.

이와 더불어 조국에 대한 사랑을 뜨겁게 표현한 또 하나의 걸작이 있으니 바로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Smetana)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My Country)'이다. 이 곡은 체코의 '프라하의 봄' 음악제의 시작을 알리는 지정곡으로 2번째 곡 '몰다우(Moldau)'(프라하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으로 체코어로는 '블타바(Vltava)'로 불린다)가 특히 유명하니 이 또한 반드시 들어봐야 할 곡이라 하겠다.

▲ 맥클레인(맨 위 사진) 형사가 유출된 항공유에 불을 붙여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를 박살내는 장면. /유튜브 'Movieclips' 캡처
▲ 맥클레인(맨 위 사진) 형사가 유출된 항공유에 불을 붙여 테러리스트의 비행기를 박살내는 장면. /유튜브 'Movieclips' 캡처

환호성과 박수, 테러리스트들이 탄 비행기가 폭파될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쏟아져 함께 나누던 환희의 감정.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는 영화 <미션> 마지막 장면, 누군가의 울음소리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툭 터져 나와 함께 오열하던 시절. 하지만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와 공간을 뒤덮고 그것을 함께 나누던 그때가 그리워 홀로 박수를 치다 겸연쩍어져 슬며시 손을 내리는 요즘이다. 몇해 전 동남아의 한 국가에서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부산행>. 많은 이들이 보러 왔기에 뿌듯했으며 영화를 즐길 줄 알기에 부러웠었다. 그들은 괴력으로 좀비들을 밀쳐내는 마동석에 환호했으며 등장인물들과 함께 놀라며 소스라쳤던 것이다. 감정을 발산하러 간 곳에서 그것을 드러냄이 부끄러운 일인가? 아마도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환호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함이 그들의 노고에 대한 합당한 인사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떼창으로 인기를 얻었던 영화가 있었다. 모두가 어울려 노래함으로 얻어지는 정서적 발산에 열광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의 비슷한 광경을 알고 있다. 나 또한 그 무리에 함께 속해 목이 터져라 질러댔으며 그 함성은 우리 모두의 우상이었던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다시 한번!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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