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작 영상만 자료로 남아
창원서 활동 김재한 감독 복원
지역 연극배우들 목소리 연기

"다 됐소. 이제 조금만 있으면 폭파 소리가 들릴 거요."/ "(상자를 내밀며) 절대 폭파 소리 따위는 듣지 못할 겁니다."/ "뭐야?" / "이게 폭탄이란 말이오!"

폭탄이 터진다. 산 속 빨치산 기지가 바위와 함께 무너진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27일 오후 7시 경남도립미술관 앞마당에서 열린 영화 <주검의 상자>(김기영 감독, 1955년) 상영회.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쇼헤이 이마무라, 히치콕과 함께 멘토로 여기는 한국 영화사 거장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이다. 우리나라 최초 동시녹음 영화고, 배우 최무룡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최무룡과 강효실은 이후 결혼을 해서 아들 최민수를 낳는다.

◇한국인이 마산에서 찍은 미국영화 = 감독도 한국인, 배우도 한국인이지만 이 영화사는 사실 미국 영화로 분류돼 있다. 영어 제목은 로 1952년부터 1967년까지 현재 창원 중앙동에 있었던 주한미국공보원(USIS) 소속 상남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첫 장편영화다. 촬영 장소는 마산이었다. 상남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영상과 영화는 이 영화를 포함해 1000편이 넘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남은 자료가 없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이 영화를 찾아낸 게 2011년이다. 하지만, 찾아낸 건 영상뿐이었다.

지역에서 상남영화제작소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 즈음이다. 그 중심에 경남정보사회연구소와 창원대 이성철 교수가 있다. 그리고 상남영화제작소를 계승하겠다며 그 이름을 그대로 영화사 이름으로 쓴 김재한 독립 영화감독이 있다.

▲ 27일 경남도립미술관 앞마당에서 열린 김기영 감독의 영화 <주검의 상자> 상영회. 변사와 배우들이 참여해 소리를 입혔다. /이서후 기자
▲ 27일 경남도립미술관 앞마당에서 열린 김기영 감독의 영화 <주검의 상자> 상영회. 변사와 배우들이 참여해 소리를 입혔다. /이서후 기자

◇독순술로 최대한 대사 복원 = 김재한 감독의 상남영화제작소는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올해 이 영화의 음성을 최대한 원래 형태로 되살려 보기로 했다. 원작 시나리오가 없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은 독순술로 대사를 최대한 복원했다. 독순술은 입술 모양으로만 무슨 말인지 알아내는 방법이다. 옛날 말투, 뒤돌아선 배우, 명확하지 않은 입술 모양 등으로 전체 대사를 알아내진 못했다. 부족한 부분은 시나리오 작가가 맥락을 연결해서 메웠다. 그래서 복원보다는 재창작이라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이런 식의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날 열린 상영회는 이렇게 해서 완성한 영화 대본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미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경남도립미술관 3층에서 12월까지 열리는 '경남도큐멘타' 전시 일부로 4전시실에서 새로 녹음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변사와 배우, 악단이 함께하는 영화상영 = 하지만, 이날 상영은 '연쇄액션활동변사극'이란 굉장히 독특한 구성의 복합공연이었다. 우선 변사가 있었다. 애초에 유성영화라 변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변사를 통해 전체 이야기를 이끌게 했다. 변사는 지역에서 연극배우와 연출로 활동하는 송진경 씨가 맡았다. 그리고 지역 연극배우 5명이 1인다역으로 현장에서 영상에 맞춰 목소리 연기를 했다. 여기에 아코디언 공연으로 분위기를 더했다. 실제로 보니 포털 등에 실린 영화 줄거리와는 내용이 살짝 달랐다. 생각해보면 <주검의 상자>를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시도다.

상남영화제작소는 이번을 시작으로 내용을 더 다듬어 내년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상영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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