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세·보조금 유지"진화
농업계 "식량·통상 주권 포기"
내달 30일 정부 규탄대회 개최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기로 하며 사실상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차기 WTO 협상까지 농업분야의 특혜 지위는 누릴 수 있지만 농업계는 '식량·통상 주권 포기'라며 반발했다.

농업분야 개도국 특혜를 당분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다자 간 협상체제가 아닌 미국이 우리나라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빌미로 농산물시장 추가 개방과 관세율 인하, 보조금 축소 등을 요구할 경우, 우리 농업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장은 피해 없다" = 정부는 이번 선언으로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미래에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 협정으로 확보한 관세와 보조금 특혜는 유지된다는 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번 의사결정 과정에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 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2008년 WTO의 농업분야 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에서 제시된 수정안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쌀을 '민감 품목'으로 보호하더라도 현재 513%인 관세율을 393%로 낮춰야 한다.

그렇게 되면 농업 보조금 총액도 현재 1조 4900억 원 규모에서 8195억 원으로 한도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그러나 DDA 협상은 회원국 간 의견 차가 커 2008년을 끝으로 10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농업인 소득 안정을 위해 '공익형 직불제'를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직불금 수령 농가에 환경·생태 등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공익형 직불금은 WTO가 감축 대상으로 삼는 농업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향후 협상이 진전돼 보조금 허용 규모가 줄어들어도 직불금을 지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1조 원을 목표로 조성 중인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대기업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늘리기로 했다. 또 농업분야 대책으로 내년 농업 관련 예산을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증가율 수준(4.4%)인 15조 3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농민들 관세·보조금 감축 가능성 우려 = 농업계는 중장기적으로는 관세와 보조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농민단체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우리 농민에게 나라는 과연 있는가. 트럼프 말 한 마디에 농민의 운명을 팔아넘겼다. 이 조치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세계무역기구 출범 이후 몰락의 길을 걸어온 한국 농업이 낭떠러지로 떠밀리게 됐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방위비로 요구하는 6조 원이면 전국 100만 농가에 매달 50만 원, 전체 농민 240만 명에게 20만 원 이상 농민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고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수호하라"고 촉구했다

농민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로 국내 농업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 입을 모았다. 강선희 전농부경연맹 정책위원장은 "미국이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우리 농업을 개방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쌀이 핵심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우리나라 식량자급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다"며 "쌀이 무너진 뒤에는 하우스 재배 품목 등이 위태로워진다. 우려되는 상황 중 하나는 농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겠다며 택지개발사업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상 이번 포기 선언은 농업 포기 선언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농민들은 오는 11월 3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정부와 여당의 농업 포기 정책을 규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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