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고된 노동자 생활, 음악하는 힘이자 바탕
내달 2일 후배들 헌정공연 앞두고 '삶 돌아보게 돼'

빨간 옷을 즐겨 입고 미소를 잃지 않는, 동네 할아버지같이 친근한 고승하(71·사진) 씨. 그의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작곡가, 교사, (민예총·아름나라) 이사장….

그의 활동 영역도 넓다. 그의 이름은 사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뉴스에서 등장한다. 그래도 본업은 노래를 작곡하고 부르는 예술인이다.

오는 11월 2일 오후 7시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고승하 음악 50·아름나라 30' 기념 헌정공연이 열린다.

김유철 시인을 필두로 가수 김산·하동임·이경민·하제운·지니·맥박, 우창수·김은희 부부, 소프라노 제호선, 박영운 창원민예총 대표 등 후배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공연을 추진한다. 이날 고 씨의 음악인생 50년을 기념해 후배 예술인들이 그의 노래를 부른다.

▲ 작곡가 고승하.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작곡가 고승하.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후배들이 헌정 공연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는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왜 좀 그렇죠? 부끄럽잖아요."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이요.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냥 어벙벙하게 살아온 거 같지는 않아요. 신문배달과 구두닦이로 학비를 벌며 중고등학교를 마쳤고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뒤늦게(31세) 대학교에 입학해 교사가 됐어요. 당시 지역에서는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문화나 교육 등 다양한 장르운동이 펼쳐졌고 전 84년 마산여상에서 일하면서 YMCA교사협의회 활동을 했습니다. 알고보니 (활동하는 사람들에 비해) 제가 나이가 많더라고요.(웃음) 나이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밀려나게 돼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김성민이 작곡한 '누가 나에게 이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라는 곡을 보면 이런 가사가 있어요. '누가 나에게 이길을 가라하지 않았네.(중략)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 주지 않았네.' 전 (사람들을)그냥 따라갔어요. 같이 가던 사람들이 그만두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노선이 바뀌거나 그러면서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고 보니까 제가 앞줄에 서게 된 거죠."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입니까.

"학창시절 뒤에서 7번째 정도 했던 제가 뒤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입학해 교사가 된 거요. 제 성격이 소극적이고 용맹적이지 못하긴 하지만,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와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했지요. 그때 아이들이 저를 많이 따랐어요.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교사를 하는 게 좋다'고 말해줬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을 했죠. 또 기억나는 건 아름나라 아이들이 2002년도 남북여성통일대회에 문화팀으로 참가해 북한 땅을 밟았을 때네요.(아름나라는 1989년 '회원동 어린이들'을 시작으로 어린이예술단 활동을 시작했다. 91년 '아름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나서 창원, 광주 등 전국으로 퍼졌다.)"

-음악 철학은 무엇입니까.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유익하면 좋겠어요. 저는 대단한 음악가가 되겠다, 이런 욕심이 전혀 없었어요. 아니 욕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일을 포기한 거죠. 자신이 없는 분야는 포기하고 딴 사람에게 당신이 해주라고 부탁해요. 전태일이 늘 제 마음속 중심이라면 박노해는 노래와 살맛 나는 운동을 이어준 사람이에요. 실업계 학교에서 일하면서 제가 관심을 둬야 할 대상은 월급을 많이 받는 학생보다는 현장으로 가는 친구들(노동자로 취직한 학생)이고 그들을 위해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고백'과 '여공일기' 등이죠. 고백은 우리 지역 해고노동자들이 즐겨 불러 줬습니다."

-오랜 세월 음악을 할 수 있는 원동력과 후배 음악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제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말하는 게 조심스럽네요. 중간에 그만두는 친구들이 안타까워요. 천재급인 친구들이 힘든 생활 탓에 음악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전 음악만 하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음악을 놓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힘들 때 그것을 뛰어넘는 힘이 됐던 게 음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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