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자연설치미술가 6인 지역 재료 활용한 작품 선봬
작품 속 작가 의도 곱씹으며 생태체험장 서울숲 거닐면 자연 향한 태도 숙고하게 돼

창녕 우포늪으로 가는 길 주변 들판에 비닐이 가득 덮여 있습니다. 양파를 심는 거지요. 긴 고랑을 따라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맘때 하는 아주심기라는 작업입니다.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 비닐에 뚫린 구멍으로 양파모를 하나씩 넣고 흙을 덮어주는 일입니다. 요즘에는 기계로도 한다지만 들판에 늘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준엄함과 노동의 고단함을 일깨워주는 풍경일 테지요.

이제 우포늪입니다. 오후 들어 왠지 노릇해진 햇살이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마다 달라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포늪은 예나 지금이나 묵묵합니다. 우포늪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마치 1억 년 동안 침묵했던 것처럼 입을 악물게 됩니다.

◇우포생태체험장에서 열리는 자연미술제 = 오늘 목적지는 우포생태체험장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무려 축구장 12배 넓이의 대규모 체험장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7년에 1회가 열렸습니다. 이때는 전체 기간이 15일이었는데, 이런저런 행사 빼고 나면 실제 작업 시간이 빠듯해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간을 21일로 잡았답니다. 자연미술보다 자연설치미술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쉽겠습니다. 경남 지역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장르인데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 매력적입니다. 자연미술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근처에서 얻은 자연 재료를 사용해, 자연 속에 작품을 설치합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으니 어찌 보면 비슷한 작업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연미술은 형태보다는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어떤 영감을 주는 부분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관객들이 자연 속에 설치된 작품에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는 걸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번에 작품을 설치한 자연미술작가는 리 쿼이치(대만), 위스누 아지타마(인도네시아), 팀 노리스(영국), 로저 리고스(독일), 도수레 릭학바도르(몽골), 강희준(한국) 이렇게 6명입니다. 우연하게도 전부 국적이 다릅니다. 여기에 창원대 미대 학생들로 구성된 '작현'팀의 작품도 들어갑니다. 작가들은 지난 8일부터 계속 현장에서 작업을 해왔습니다.

▲ 몽골 도수레 작가의 우포 따오기 조각. /이서후 기자
▲ 몽골 도수레 작가의 우포 따오기 조각. /이서후 기자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인도네시아 작가 위스누와 그의 작품. /이서후 기자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인도네시아 작가 위스누와 그의 작품. /이서후 기자

◇기계톱 조각과 나무 놀이터 = 현장에서는 26일 개막식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기계톱 소리가 요란한 곳은 몽골에서 온 도수레 작가의 작업장입니다.

몽골 최초 얼음조각가이기도 한 이 작가는 기계톱으로 실제 크기의 동물을 조각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작품과 교감하도록 하는 게 작가의 목표랍니다. 이분 혹시 몽골에서 주술사를 하셨을까요. 분명히 나무로 만든 것인지 알고 있는데도 마치 조각에서 실제 그 동물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톱 자국이 만든 질감이 거친데도 그렇습니다. 조각 중에 우포늪 따오기와 산토끼 노래 주인공 캐릭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가가 이 지역에서 유명한 동물이 뭐냐고 물어서 알려줬더니 바로 만든 거라고 합니다.

도수레 작가 옆에서 조수 노릇을 하는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위스누 아지타마 작가입니다. 자기 작업을 다 끝냈기에 다른 작가의 작업을 돕는 모양이네요. 위스누 작가는 1999년생으로 젊은 작가지만, 그의 고향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는 그의 설치 작품이 지역 상징처럼 돼 있다고 하네요. 이번 미술제에서 위스누 작가가 만든 건 '우리는 같은 놀이터에서 놀 수 있을까'란 작품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무를 타고 놀아서 나무는 그에게 놀이터와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착안해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구조물을 엮어 기존에 심어져 있던 두 나무를 연결했습니다. 규모나 형태가 꽤 멋진 작품입니다.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국내 작가 강희준과 그의 작품 '팡파레를 울려라'. /이서후 기자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국내 작가 강희준과 그의 작품 '팡파레를 울려라'. /이서후 기자

◇거대한 나팔과 물의 수호신 = 저너머로 거대한 나팔이 보입니다. 충남 공주에서 활동하는 자연미술가 강희준 작가의 '팡파레를 울려라'라는 작품입니다. 나팔 작업은 언젠가 러시아에 초대되어 갔을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대나무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미술제에서 만든 건 지난해 7월 일본 니가타현 나카고 그린파크에서 열린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야투-스펙트럼전'에서 만든 것과 같은 건데요. 그때는 나팔이 땅에 누워있었다면 이번에는 내부를 철골로 고정해 반듯하게 세웠습니다. 확실히 세운 게 더 좋아 보이네요.

생태체험장 내 서울숲을 지납니다. 서울시와 창녕군 교류사업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서울 남산 소나무와 우포늪 왕버들로 꾸민 인공 습지입니다. 서울숲을 지나면 곧 대만에서 온 리쿼이치 작가의 '물의 수호신'이란 작업을 만나게 됩니다. 물의 수호신이지만 작품은 참나무로 만든 겁니다. 대신 작품의 형태가 물결 모양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연 설치 작업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재료를 결합하는 방식에서 확실히 작업을 많이 해본 작가라는 게 드러나네요. 이 작품은 안에서 봤을 때도 인상적입니다. 나무들이 마치 휘돌아가는 물결처럼 천장을 향해 가고 있거든요. 작가의 바람처럼 '물의 수호신'이란 이 작품이 오래도록 우포늪을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독일 작가 로저 리고스의 작품. /이서후 기자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독일 작가 로저 리고스의 작품. /이서후 기자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영국 작가 팀 노리스가 작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 /이서후 기자
▲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에 참가한 영국 작가 팀 노리스가 작품을 만들고 있는 모습. /이서후 기자

◇대나무를 보며 생각하다 = 독일에서 온 로저 리고스와 영국에서 온 팀 노리스 작가는 대나무 작업을 선보입니다. 사실 서양작가들에게 대나무는 낯선 재료입니다. 다만, 그동안 아시아 여러 곳에서 작업을 했던 두 작가에게는 이제 익숙하겠지만요.

로저 작가의 작품은 '생각의 식민지'란 제목이 붙었습니다. 그는 환경활동가이기도 한데요. 지금 우리 삶이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에서 보존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생각의 전환입니다.

팀 작가의 작품은 '순간포착/꽃봉오리가 터질 때'란 제목입니다. 아마 제일 마지막까지 작업을 한 작가겠는데요. 가는 대나무를 하나하나 엮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오랜 걸린 만큼 실제 완성되면 상당히 볼만한 작품이 될 것 같네요.

제2회 우포자연미술제 개막식과 부대행사는 26일과 27일에 열립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더라도 작품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언제라도 가서 둘러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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