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동체 결속 핵심수단이었던 스포츠
전국체전 통해 '우리'를 발견하고 있는가

"우리는 영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스카우스다(We're not English. We are Scouse)."

스카우스는 맛없기로 유명한 리버풀 지역 고기 수프 이름이다. 그리고 위 문장은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인 리버풀FC 응원단의 대표 구호다. 리버풀 응원단은 자기 도시를 '리버풀 공화국'이라고 부르곤 한다. 여왕이 존재하는 왕국에서 공화국을 주장하니 옛날 같으면 역모다. 영국 역사에서 공화파와 왕당파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인 적이 있고, 20세기에는 독립을 꿈꾸는 아일랜드인들이 공화국 건설을 내세우며 왕국인 영국에 저항했다. 리버풀은 영국에서 아일랜드 출신들이 가장 많이 사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도시다.

리버풀 응원단의 구호를 우리 경상도식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보리문디들이다." '문디'는 경상도 사람들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지만, 우리끼리 쓰면 묘한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주문이다. 리버풀 시민들에게 고기 수프 '스카우스'도 그런 존재다. 타지역 사람들에겐 조롱거리지만 리버풀 사람들에겐 애틋한 음식이다. 그들에게 리버풀 FC는 단순히 축구팀이 아니다. 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을 투사하는 존재다. 리버풀 시민에게 안필드 스타디움은 대성당이고, 경기는 곧 미사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자신들이 리버풀 시민임을 강렬하게 체험한다.

지난 14일 자에 소개한 아일랜드의 게일릭 스포츠 클럽도 지역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상징이다. 32개의 카운티는 저마다의 깃발과 상징색, 그리고 유니폼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수도 더블린은 하늘색, 문화수도 골웨이는 자주색,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케리는 초록 바탕에 노란 띠, 북서쪽 마요는 초록 바탕에 빨간 띠, 제2의 도시 코크는 빨간색이다. 경기 있는 날이면 자기 지역 유니폼을 입은 시민이 넘쳐나고, 집 마당에 팀 깃발을 내건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자기 지역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올림픽은 민족에 기반한 근대국가 건설 바람이 한창 불던 19세기 유럽에서 탄생했다. 민족의 실체를 확인하고 체화하는 프로그램으로 '발명'된 것이다. 승리와 패배가 반복되고, 영웅과 역적이 등장하면서 공동체의 서사는 풍성해졌다. 그 매력이 엄청나 1936년 독일 나치와 1964년 일본 등이 체제 선전의 장으로 올림픽을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국경 안 스포츠는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스포츠를 통해 지역은 자기만의 서사와 상징을 만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스포츠는 1970년대부터 심각하게 고장났다. 오로지 체제 경쟁과 선전 수단으로 여긴 박정희 정권이 체육 특기자 제도와 태릉선수촌을 만들면서 스포츠에서 공동체 맥락이 거세당했다. 오로지 국위 선양을 위해 달려가는 엘리트 스포츠에 지역민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전국체전도 해를 거듭하면서 엘리트 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곳으로 변질했다. 이번 체전에서 경남이 종합 4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그 사실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도민을 나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우리는 당장 "왜 스포츠를 하는지?"부터 물어봐야 한다. 적지 않은 예산이 체육 분야에 사용되고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단순히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스포츠는 건강만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스포츠는 우리를 발견하는 매우 '인문적인 활동'이다. 오늘날 지역의 다양한 체육활동에서 '우리'는 발견되고 있는가? 전국체전에서 경남도민은 '전국 속의 우리'를 발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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