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차를 마신다. 티백이 아니라 찻잎을 우려 마시는 일은 드물다.

게다가 녹차보다 더 흔치 않은 발효차다. 양손으로 찻그릇을 들어 올릴 때마다 추녀 끝에 달린 

풍경소리가 은은한 울림으로 목을 타고 넘어간다. 왠지 마음을 정화해야 할 것 같은 초가을 오후.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정동주(73세) 선생의 집, 동다헌에서 분에 넘치는 차대접을 받았다. 

결코, 가볍게 한 잔 마시고 일어날 수 없는 한국의 차와 차문화, 그리고 '차살림학'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에 종속된 한국 차문화

"우리는 일본보다 먼저 중국차를 배웠지만 중국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 찻그릇 이름을 부를 때 일본은 라쿠(樂)라는 이름을 독자적으로 창안했다. 반면 우리는 중국말인 다완(茶碗)과 찻잔(茶盞)을 그대로 쓴다. 더 한심한 것은 우리 흙으로 우리 작가들이 그릇을 만들었는데 우리 이름을 붙일 줄 모른다. 완전 노예다." 

정동주 선생은 한국 차문화의 고유한 명칭처럼 사용하고 있는 다도(茶道)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다도는 중국 당나라 때부터 차문화의 상징적인 이름인데, 1830년 초의선사가 중국의 서적에서 글자를 옮겨 적인 것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졌다. 1970년대 들어 우리 차인 단체들이 명확한 개념 정립이나 역사의식 없이 중국과 일본을 흉내 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이 집대성한 차살림학의 이론과 생활 중 <비교차문화론>을 보면 한국 차문화의 독자성이 이제껏 논의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 분야 전문 연구자가 양성되지 않았고, 두 번째는 독자성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차문화를 권력의 수단으로 삼거나 단순한 취미생활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이나 대학원마저도 자격증을 주는 교육과정 위주로 운영해 차문화의 본질은 등한시한 것. 

선생은 한국 차문화의 독자성을 확립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고유의 개성을 갖지 못한 채 중국과 일본의 차문화 소비시장으로 남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차는 음식이면서 정신과 역사, 예술, 약리성을 지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화이자 잠시도 단절된 적이 없는 특별한 문화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우리에게도 독자성, 본디 참된 차문화가 있었다." 정동주 선생이 한국 차문화의 원류를 찾고자 오래 탐구한 결과다. 

그럼 중국·일본과 다른 한국 차문화는 무엇일까. 우선 중국문화와 관계없던 가야문화에서 수로왕과 황옥의 혼롓날 난액(蘭液)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우리 차문화의 독자성을 인정해야 할 사료로 제시했다.

이런 문화가 있었기에 6세기 때부터 전해진 중국 차문화가 자연스럽게 신라 지배계층에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은 중국의 유학(儒學)에 점령당하면서부터 그 독자성을 잃기 시작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고려 익제 이재현부터 시작해 조선 한재 이목까지 246년 동안 마신  '선비차'를 소개했다. 

"이 시대 선비문화를 이끈 사대부들은 언행일치를 실천한 유일한 계급으로, 차를 마실 때의 철학은 차나무가 생긴 식물학적인 생태를 그대로 닮으려고 노력한 것"이라며 "중국·일본에 없는 독특한 철학적 뿌리, 나는 그것을 학문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동주 선생의 차살림학 교과서.
▲ 정동주 선생의 차살림학 교과서.

차살림학은 '차로 사람을 살린다'

'차살림학'은 한국 차문화의 독자성을 확립하면서 창안한 한국의 인문학 분야에 속한다. 차와 문화에 관한 새로운 학문 명칭이다.

정동주 선생은 차살림학이 차로 사람을 살린다고 말한다. '차살림학의 이론과 생활'은 <비교차문화론>부터 시작해 총 9개 분야로 구성했다. 교과서는 인쇄를 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써내려간다. 앞으로 모두 15권의 교과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차살림학을 가르치는 곳은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와 부산 명지 인문학교실, 사천 동다헌이다. 

학교 이름은 '무하여' 차살림학교다. 무하여는 팔만대장경 법화 열반부 표제에 있는 '너는 무엇 하러 여기 왔느냐?'라는 뜻이다.

선생에게 차와 찻그릇은 각별하다. 한국 차문화가 독자성을 갖추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우리 차문화를 상징하는 이름은 '차살림', 차법은 '살림법'으로 정했다. 다음으로, 찻그릇은 형태에 따라 풍로는 '화로', 다완은 '보듬이', 다관은 '우림이', 숙우는 '식힘이', 수방은 '물단지', 탕정은 '끓임솥', 화병·화기는 '꽃병'이다. 모두 정겨운 우리말이다. 

▲ 정동주 사천 동다헌 시자 시인.
▲ 정동주 사천 동다헌 시자 시인.

특히 선생은 보듬이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다. 몇천 원도 안 할 정도로 흙으로 빚은 찻그릇이 흔한 요즘이지만 설명을 듣고 나서는 내 손에 쥔 보듬이가 특별하고 귀했다. 

오랜 궁리 끝에 선생이 창안한 보듬이는 두 손으로 보듬어 안는 찻그릇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보듬어 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나와 견해가 다르다고 진영논리로 적이 되고, 밀어내고, 분열하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과 여, 지역 갈등으로 우리나라가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 찻그릇은 그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쓸어안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차는 그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보듬이에 담은 찻잎은 동장윤다(東藏輪茶). 아침 해를 품은 듯 환한 빛깔 동장윤다 한 잔에 마음을 담아 보듬어 안는 차다. 지리산에서 자란 유기농 차나무 잎으로 수작업을 통해 만든다. 

동장윤다 제다법은 중국 선종 사찰에서 자리 잡은 약발효차법을 토대로 삼아 20여 년에 걸친 연구와 실험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보듬이와 동장윤다가 함께 하는 차살림은 차수건 위에 서로 다른 질감과 색깔의 그릇을 한데 올려 어우러짐을 배우게 하는 차법으로 소개되고 있다.

차살림학은 한국 차와 차문화에 관한 정동주 차살림학자의 새로운 선언이다.

차살림학을 집대성한 이유

"차문화는 서민문화가 아니다. 지성적인 문화, 한 국가의 상류문화다. 중국은 이 문화가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됐다. 반면 우리나라 상류층은 술을 마시는 음주문화다. 한국 차문화의 뿌리는 오래됐지만 커피와 홍차와 지배당해 있다. 차문화가 굳건하지 않으면 더 강한 나라에 정신을 지배당한다. 우리 상류문화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

한국 상류층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정동주 선생이 차살림학을 집대성한 이유다. 

선생은 40여 권의 시집과 소설을 펴낸 문학 작가로서 널리 알려졌다. 1966년 겨울 운명적으로 차 문화에 접하게 된 이래 지금까지 차농사도 직접 지으면서 한국 차살림학을 개척한 연구자다. 

우리 차 문화사의 흐름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히고자 <차와 차살림>, <조선 막사발과 이도다완>, <다관에 담긴 한·중·일 차 문화사> 등의 책을 발간했다.

이제 차살림학으로 결실을 맺었다. 차에 대한 접근법은 간결하고, 확고하고, 명확하다.

"차를 자본재, 산업으로 생각하면 차를 마시는 사람은 소비자로 끝난다. 하지만, 정신이 담긴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마시는 사람은 수행자가 된다."

우리 사회의 고름 가득한 환부를 외과의사의 칼이 아닌 한 잔의 차로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

선생의 연구와 강의가 계속될수록 그 희망은 커질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차에 대한 예절을 가르치는 곳은 많다. 하지만, 차 자체를 가르치는 곳은 드물다.

마당을 걸어나오면서 동장윤다의 청아한 향이 이미 귀에 익은 풍경소리와 함께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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