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정체성 형성 중심처
교육시설·휴식처로 애용
건설적 기록 수집 좋은 예

내 어릴 적 소망은 아메리카(당시 혼자서 부른 미국 명칭)에 가는 것과 그랜저를 사는 것이었다. 당시 어린 내 눈에 현실의 부자들은 그랜저를 타고 다녔고 티브이에 나오는 부자들은 미국에 가거나 미국을 찬양했는데, 아마 그 영향이 아메리카와 그랜저라는 소박한(?) 꿈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결국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기 전, 그 소박한 꿈은 이루어졌다. 물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가는 길이었지만 목적도 없이 꿈꿨던 아메리카 탐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나의 기본적인 인식은 위험하고(총기사고·테러), 치열하거나 합리적인 곳이라는 것과 기록관리 분야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기록의 수집과 공개에 열성적인 곳이라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작년에 기고했던 '미 국립 아카이브(NARA)'를 보면 단편적으로 그 내용이 나와 있다.

오늘 내가 쓰는 내용은 미국 탐방에 대한 다큐가 아니다. 기록관리 기관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만큼 언어사용이 원활하지 못했고, 내가 그곳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깨달아서다. 이 글은 그림을 보면서 강렬한 전율을 느낀 사람의 감정을 활자화한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본 단어는 freedom, liberty, equal, justice이다. 미국 도착 첫날 본 것은 'statue of liberty(자유의 여신상)'이었고, 한국전쟁 참전용사기념관 문구에도 'Freedom is not Free'라고 적혀 있었다. 특히 주요 방문지였던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루스벨트 대통령기록관에서는 이 단어들에 대한 내용이 세부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이미 세계적으로 '자유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신을 모으는 곳인 기록관련 기관에 '자유'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가 'Freedom is not Free'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기록을 수집하고 있는 사람들.
▲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기록을 수집하고 있는 사람들.

◇국립기록관리청

국립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이하 NARA)은 우리나라로 보면 국가기록원과 같은 곳이다. 두 곳에 청사가 있었는데 1934년 설립한 1청사와 1994년 세워진 제2청사다. 제2청사를 먼저 방문해 관계자와 해당 기관의 기록관리 업무절차 브리핑을 듣고 간단한 질의응답과 시설관람을 했다.

NARA의 기록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신분증 발급과 간단한 안내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원하는 기록을 검색하고 요청하면 1시간 정도 후에 기록이 나오는데, 이용객들은 그것을 복사하거나 스캔하는 등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몰려든 수십 명의 사람이 진지하게 각자의 목적을 수행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NARA 2청사는 화려하지 않았다. 전시실도 소박했고 기록에 대해 더 알려주기 위해 애쓴 흔적은 많지 않았다. 기록을 수집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쉽게 기록을 찾을 수 있도록 각종 기기를 비치해 놓았고 안내원들이 곳곳에 상주하여 기록물 수집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기록을 무단 반출 할 수 없도록 곳곳을 지키는 보안요원들과 기본적인 신체리듬을 보장하는 식당과 화장실, 휑한 기운이 느껴지는 로비의 대통령과 그 기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이 기관은 '기록'으로 존재를 설명하고, 기록이 없다면 설명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핵심은 '기록'이었다.

두 번째 방문한 제1청사는 건물 자체가 매우 아름다웠고 건물만으로도 고개를 숙이게 하는 위용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서두에 말한 자유(liberty), 권리(right), 정의(justice) 등에 관한 전시를 보았다. 내용은 자유를 위해 이민을 온 사람들이 만든 미국, 그리고 그 자유와 평등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들, 흑인차별에 대한 투쟁, 여성의 권리 등에 관한 것이었다.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는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자유'를 열망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시간들을 존중했다. 또한 그들이 지나온 그 길을 어린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 평등,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는 점점 단단해질 것 같다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잘살아 보세'나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서 이만큼 잘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것들만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는 어린 시절 교육으로 지금도 '잘'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너무 오랜만에 먼 타국에서 발견한 강렬한 기록이었다.

▲ 미국 국립기록관리청 제1청사 모습.
▲ 미국 국립기록관리청 제1청사 모습.

◇뉴욕주립아카이브

뉴욕주립아카이브는 도서관, 박물관, 기록관이 함께 모여 있는 건물로 '라키비움'이라 불리는 공간이었다. 토요일인데도 관리자들이 환대를 해 주었고 그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도 듣길 바랐다. 원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보존시설도 친절하게 안내하고 가장 오래된 기록도 거리낌 없이 열람시켜 주었다. 한국 관련 기록은 영화대본이 대부분이었지만 퀸스 대학에 가면 한국 관련 기록이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해주었다. 토요일이라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도 기록을 찾는 사람들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기록관)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공원에 왔다고 생각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살았던 고향이고 집이라고 하는데 어림짐작 창원 마산야구장만한 크기의 기록관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같이 간 지인과 우리 아들도 여기서 키우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미국은 현재 13개의 대통령기록관이 있고 국가 지원을 받고 있다. 기록관은 지지자들에 의해 설립되고 NARA에 기탁 후,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국가기록관리정책에 따라 운영되고 있었다.

회의장, 기록열람·보존공간, 전시관, 대통령이 살던 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통령기록관은 필자가 방문한 날에도 많은 시민이 그들의 대통령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 있었고 일부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내부에 걸린 정의와 자유에 대한 설명문.
▲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내부에 걸린 정의와 자유에 대한 설명문.

전시실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있었던 사실관계들을 시대별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기간(1933~1945년)은 제2차 세계대전,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와 맞물려 있던 시기였다. 때문에 기록관 내부에 일본과 전쟁(태평양전쟁)에 대한 내용도 영상이나 글로 전시되고 있었고 서두에 말했듯 자유, 평등, 정의에 대한 내용을 부분적 테마로 설명하고 시민들에게 교육되고 있었다.

내가 본 루스벨트 대통령도서관은 인근 지역주민에게는 휴식의 공간, 그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연구와 학습의 공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공간 같았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록관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런 공간들이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의 기록문화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대통령도서관(기록관)에 대한 내용으로, 도서관연구소 웹진(2010.7.16.)이 발행한 '미국대통령도서관법 1986'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대통령도서관은 역사적 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여 시민·학생들에게 미국역사의 진수를 전달하는 역사교육기관으로, 사회적 통합과 미국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공공시설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특히 NARA 예산의 16%를 차지하는 대통령기록관 방문자가 NARA 전체 방문자의 63%를 차지하고 있는 점은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공공적 임무의 중요성을 명확히 확인시켜주고 있는 사항이다."

건립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든 기록은 진실을 증언하는 사실로써 기능할 것이다. 또한 대통령기록의 체계적인 관리와 효율적인 공개시스템을 갖춘 기록관은 연구자들에게는 당대사를 깊이 있게 다루는 학문의 공간으로, 현 권력자들에게는 그들의 공과도 언젠가 낱낱이 기억될 것이라는 두려운 공간으로, 시대를 함께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공간, 반성의 공간,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어릴 적 미국탐방에 대한 소원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더 많은 과제와 소망을 안겨주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이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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